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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광 Oct 18. 2024

세 권의 낭만 (2)

철학, 문학, 그리고 교양

이제 와 돌이켜 볼 때, 심야의 열람실에서 철학서를 탐독하고 있었다는 것은 진즉에 졸업하고 넘어왔어야 할 지적 허영에 뒤늦게 빠져서 허우적대었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그래도 가아더의 소설을 읽는 것은 니체를 이해해 보겠답시고 폼을 재는 것보다는 훨씬 진실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대체 문장이 지면의 어디쯤 붙어있는 것인지조차 알아먹을 수 없는 『짜라투스트라』 따위 난서(難書)만을 진짜배기 철학책 취급하던 치기 어린 고딩에게 아주 놀랄 만큼 순박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금 인제 와서야 생각해 보면, 그것은 고상하고 우아한 윤리 선생님에 대한 어떤 ‘팬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주문대로 『10가지 성찰』 중 첫 꼭지인 ‘신 존재 증명 문제’를 발표하기 위해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후 철학과 세미나실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했던 발제(發題)의 첫 경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신에도 반영되지 않고 수능 문제를 풀어내는 데도 하등 도움될 것 없는 이 작업은, 외고 생활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옳은 공부를 한 것으로 생각되는 아주 희귀한 경험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다른 과목은 몰라도 윤리만큼은 다 맞혀버리겠다는 각오로,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정 윤리 교과서를 착실하게 회독해 나갔다. 비록 사백 점 만점의 구 수능 체제에서 국민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점 내외에 불과하였고, 그나마도 상식선에서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퍽 낭만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얘야.”     

   

은 선생님은 예의 우아하신 태도로, 그러나 측은한 눈빛으로 읊조리시곤 했다.      

   

“시인은 배가 고프다.”     

   

맞는 말씀이었다. 낭만이란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데 고명으로 뿌릴 수 있을지언정 생의 바로미터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을 수능 직후의 대입 전쟁에서나 느지막이 깨달은 나는 몹시도 방황하였다. 나는 교정 구관 4층의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그저 대출실적만 부지런히 쌓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넓게 보자면 독서는 어떻게든 논술·면접에 도움이 될 것이니까,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종례를 마치면 신당동 동사무소 앞으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버스를 잡아타고서 창 너머로 지나쳐 가는 풍경을 멀거니 내다보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면 적당히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가서 그날 빌려온 책을 펼쳤다.     

   


그렇게 팔공산의 어느 자락에서 『교양(Bildung)』을 읽었다. 반월당 교보문고에서 아직도 평대에 깔아 놓은,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창작산실(수필) 선정작. 이 글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문장웹진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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