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문학, 그리고 교양
종례를 마치면 신당동 동사무소 앞으로 가장 먼저 들어오는 버스를 잡아타고서 창 너머로 지나쳐 가는 풍경을 멀거니 내다보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면 적당히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장소로 들어가서 그날 빌려온 책을 펼쳤다.
그렇게 팔공산의 어느 자락에서 『교양(Bildung)』을 읽었다. 반월당 교보문고에서 아직도 평대에 깔아 놓은,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Alles, was Mann wissen muss)”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이름만큼이나 두꺼워서 그 존재만으로도 뭇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꼬장꼬장한 독일인 할아버지 식의, 깨진 거울 조각처럼 날 선 유머에 매료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야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이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다.
오늘날, 교양 개념에 대한 슈바니츠(Dietrich Schwanitz) 교수의 예리한 통찰은 내 강의에 무조건 등장시키는 ‘필수요소’다. “반 고흐……? 이 사람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키퍼가 아닙니까? 지난 시즌에 자책골을 넣었지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면 덧붙인다. “여러분이 ‘교양 없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저런 말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참 쉽죠?)” 이것은 한편으로 소위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쓴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계 맺음을 위한 암묵적인 룰’을 뜻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적 통찰을 담은 아주 멋진 알레고리다.
이것은 또 한편으로 3년 내내 ‘엘리트 고등학교의 룰’을 적절히 체화하지 못한 부적응자에게 뒤늦게나마 큰 위안을 주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날 ‘소피’와 함께 ‘교양’을 세트로 안내한다. “φιλοσοφία” 아래에 “Bildung”을 쓴 뒤 “‘Building’과 닮아있다”고 운을 띄운다.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지어 올린다는 뜻입니다. 한 인간의 영역 안에서 짓는 것이 되겠지요. 가령 한 인간의 ‘내면’에서 지어 올릴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나는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세 권째의 낭만 이야기를 하겠다.
※ 202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문학창작산실(수필) 선정작. 이 글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문장웹진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