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다이어리 -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아이였다.

by Jenny

직장생활 15년 차

대부분이 남자인, 처음 회사 입사했을 때에 층에 여자 화장실이 없던 건물도 있었을 만큼 남초회사에 다니는 나는 직장생활 15년, 큰 아들 열 살, 작은아들 여덟 살을 키운다.


오늘 문득 아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랐을까?

당연히 YES, DEFINITELY YES다.


1년 가까이 휴직을 하고 있다. 때마침 길어진 육아휴직 덕분이다. 덕분에 아직도 글을 못 읽는 난독증 아들 2도 돌봐주고 아들 1의 불안도 완전히 붙들어 바닥에 딱 붙여둘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회사를 가지 않았다면 불안해서 어린이집에 가는 걸 무서워했던, 그래도 당연히 가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돌아와서 집에 와서 한 시간이나 울고 있던 아이에게 짜증 내지 않았을 텐데.


폐렴이 곧 온다고 했을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기는 순간은 없었을 텐데.


ADHD라 글 못 읽을 수 있다고 하는 데도 난독 센터에 갈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내 인생에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인데 늘 뒷전으로 밀리곤 하던 나의 아이를 선순위에 놓을 수 있었을 텐데. 기다려. 그만해라는 말을 덜 했을 텐데. 아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투정을 화내지 않고 받아줬을 텐데. 회사 스트레스가 90이라면 아이는 10밖에 안 주는데도 그 10을 주는 아이에게 내 화를 보이는 그런 겁쟁이 짓은 안 했을 텐데.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세상 사 다 내 맘 대로 되고, 내가 '열심히'만 하면 얻을 수 있고, 내가 노력해서 얻지 못하는 일은 없다. 나는 더욱더 '생산적'인 삶을 살 것이다 부르짖었을 것이다.


지금 내 생각은 어떠냐면....

시발.. 생산적으로 사는 게 뭔데?

내가 뭐 기계냐? 그런 식으로 가치가 매겨질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불안장애, 강박, ADHD와 공존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그런 아이들까지 키운다고?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일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다고? 욕심이 보통이 아닌 녀석이로구나.

물론 그땐 몰랐지만.....


결국 이리저리 부딪히고 우당탕탕 거리다가 이제야 들여다보니 내겐 일반 워킹맘보다 더한 짐이 지워져 있었고 번아웃이 왔을 때에도 "아 이 정도면 번아웃 올 만 해, 나 번아웃 자격 있어"라고 나를 인정해주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그만큼 나 자신에게 모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손에 쥔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우울증과 번아웃을 알아봐 준 친구들, 기꺼이 도움을 준 친구들, 내 편이 되어준 부모님, 그리고 절대 들여다보지 못하던 자신의 우물을 마주한 남편까지.


내게 중요한 것은 일과 아이들 뿐인 줄 알았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보인 것이다. 내가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그러면서 다시 안개가 걷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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