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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20. 2022

신입 PM/PO가 '1인분'을 해내려면

주식회사 두들린에서의 경험, 그리고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에 대하여


3개월의 PO 인턴 이후,
새롭게 생겨난 고민거리






1. PM/PO를 다시 정의해보자



2022년 상반기에는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PM/PO/서비스 기획자가 되겠다는 결심 이후, 두 가지의 새로운 집단에 속하는 경험을 했다. 코드스테이츠 PMB 10기에서 새봄을, 두들린의 PO로서 초여름을 맞았다. 코드스테이츠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숱하게 말해왔으므로, 오늘은 언급한 적 없던 후자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B2B SaaS 기업 두들린에서 3개월 동안 인턴이자 Product Owner(PO)로 일하며 느끼고 겪었던 바를 풀어놓으려는 것이다.




물경력, 아니면 번아웃?


보편적인 인식 속에서 인턴이라는 직급과 PO라는 직무의 결합은 썩 조화롭지는 못하다. 인턴은커녕, “신입이 PM/PO를?”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네!”라고 답하지 못하고 있는 게 나의 현실이다. ‘Owner’라는 단어부터가 ‘주인’, ‘소유자’ 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각 분야의 경력자들로 꽉 들어찬 제품 팀을 ‘이끄는’ 역할을 갓 들어온 막내가 담당한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PO가 잘하면 되는 일은 딱 두 가지이다. 문제 정의. 그리고 일정 관리.


출처=https://ppss.kr/archives/245130


그러나 PM/PO와 같은 기획 직군은 다른 직무들에 비해 구덩이를 깊게 파기 어렵다. 위 사진처럼 아이디어의 퀄리티보다는 아이디어의 스펙트럼이 중요한 직무이기 때문이다. 즉, PM/PO는 제너럴리스트의 끝판왕과도 같은 직무이다. 남들에게 내세울만 한 스킬과 지식,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얼라인먼트, 비장의 필살기 같은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가지기란 매우 어렵다.


이 말은 즉슨, 업무 범위에 마땅한 한계나 제한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중심축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잡무는 다 떠맡는 물경력으로 전락하거나,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감 때문에 번아웃에 허우적댈 수 있다. 물 아니면 불이라니.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일수록 진짜배기들만 모였다고 하던가. 하지만 나는 이미 PM/PO라는 직무를 선택하면서부터 물지옥과 불지옥을 견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정도 각오 쯤은 했으니까 코드스테이츠 PMB도, 두들린 PO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PM/PO에 대한 위와 같은 부담감을 어느 정도 떨칠 수 있던 데는 PM/PO라고 해서 모든 걸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팩트를 깨달은 덕분이었다. 두들린에서 PO 역할을 하면서  사실을 확실히 체득하게 됐다물론, 스페셜리스트들로 가득한 IT 스타트업에서 한창 업무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 뒤통수에 대고 질문부터 던지고 보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기는 했지만, 적어도 3개월 동안 “잘 모르겠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할 수 있는 태도를 확실하게 겸비할 수 있었다.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PM/PO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PM/PO의 성장 동력은 아무래도 “철판을 얼마나 잘 까는가?”에 달린 것 같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모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초보 PM/PO의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질문인 듯하다. 3개월 동안 실무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결과, 조직 내에서 기대하는 신입 PM/PO의 역할은 내 기대보다 훨씬, 훨씬, 훨씬 적었다.


나는 걸핏하면 자의식 과잉을 일삼는다. 인턴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PO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계획하고, 셋팅하고, 리드하고, 관리해야 하며, 개발은 물론이거니와 디자인에도 정통해야 하고, 그로스, 마케팅, 세일즈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라는 고민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꿈 깨세요! 당신은 인간입니다!”


출처=https://ppss.kr/archives/245130


PM/PO 역시 수많은 직무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이 세상엔 깊이 있으면서도 폭넓은 역량을 갖춘 PM/PO/서비스 기획자들도 많다. 그리고 그들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에 간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꿈꾸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내가 일상에서든, 업무에서든 추구하는 가치를 꾸준히 이어가고픈 사람이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PM/PO라고 해서, 제너럴리스트라고 해서 모든 걸 알 순 없고 모든 걸 할 순 없다.


일을 설렁설렁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쏟아지는 업무 중에서 무엇이 제품 팀에게 도움이 될지 선별할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모든 걸 혼자 다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PM/PO야말로 최악이다.


디자인은 당연히 디자이너가 더 잘하고, 개발은 당연히 개발자가 더 잘한다. 그로스, 마케팅, 세일즈도 마찬가지이다. 모르겠다면 그들에게 질문하고, 업무를 맡기면 그들을 믿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문제 정의와 일정 관리 외에, PM/PO가 잘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도 말하고 싶다. 최대한의 소통과 최소한의 참견. 이를 깨달을 수 있던 이유는 좋은 개발자, 디자이너, 그리고 유관 부서의 사람들과 일한 덕분이었다.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가 되려면?


<제너럴리스트의 생존법 : 온라인 글쓰기>(참고)라는 게시글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로 나를 포지셔닝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온라인 글쓰기'란 업계나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 혹은 업무 경험에 대한 글을 웹 상에 공개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지금 내가 이와 같은 포스팅을 쓰면서 가꿔나가고 있는 브런치처럼.


커리어에 대한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작업을 통해 포지셔닝해야 할 영역을 발견하고, 나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증거를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너럴리스트의 생존법 : 온라인 글쓰기> 글쓴이의 생각이었다. 이 포스팅을 읽고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나, 완전 제너럴리스트 체질이구나!"


나만의 스토리를 쌓아나가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두들린과 내가 접점을 가질 수 있던 이유도 브런치 포스팅(참고) 때문이 아니었던가. 스토리는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인턴 기간은 끝났고, 남는 시간은 많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3개월 동안 쌓은 스토리에 대한 증거를 남기는 일일 테다.






2. 두들린에서의 순간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내가 두들린의 그리팅 제품 팀에서 일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말해왔지만, 다시 한 번 소개하자면 두들린은 기업용 채용 관리 솔루션(ATS) 그리팅을 운영하는 B2B SaaS 기업이다. 이때의 ATS란 기업에서 채용 업무를 맡고 있는 채용, 인사담당자의 시간, 비용, 노력을 줄여주어 필요한 인재를 더 빠르게 채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덕트이다.


두들린의 PO가 담당하게 되는 업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객의 소리(VOC)를 기반으로 문제 정의하기

제품 팀원들에게 이 기능을 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제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조율하기

제품 팀원들이 열심히 만든 기능을 고객들에게 잘 전달하기


이중에서 나는 특히 고객의 소리(VOC)를 기반으로 문제 정의하기에 집중했다. PM/PO 지망생이던 때에 개인 또는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실질적인 VOC를 들어볼 수 없다는 점이었기 때문이다. 실무에 투입되어 제품을 사용하는 실사용자들의 생생한 피드백에 귀기울이고, 이를 제품 팀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매우매우 뜻깊고 재밌었다.


두들린에서는 정량적 & 정성적 VOC를 모두 적재하고 분석하고 있다. 두들린의 일원이라면 누구든지 오퍼레이션 팀이 관리하는 기능요구 대시보드와 채널톡에서 오가는 문의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인입되는 VOC를 매일, 매주, 매월, 분기별로 다각도로 분석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제품 팀의 Next Step을 결정하는 게 일반적인 프로세스이다.




일곱 건의 고객 인터뷰에서 알게 된
B2B 고객의 특징


나는 그중에서도 PO로서 직접 제품에 관한 정성적인 VOC를 수집하러 다녔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즈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이전에 브런치로 제시했던 랜딩 페이지 리뉴얼 스프린트를 거의 끝마칠 때 즈음, 그리팅 제품 내 '어떤' 기능의 개선 방안을 도출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 랜딩 페이지 리뉴얼 스프린트에 관한 내용은 위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능은 그리팅 제품의 메인 기능이기도 했고,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 기획을 확실하게 잡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VOC를 최대한 적극적으로 수집하려고 노력했고, 그 방편으로 고객 인터뷰를 선택했다. 최대한 많은 고객사의 목소리를 듣고, 최선의 우선 순위를 결정한 다음에야 PRD를 작성하고 제품 팀에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서비스 기획을 위한 고객 인터뷰를 공부했던 바(참고)를 적극 활용해서 인터뷰 대상이 될 고객사별 분석, 인터뷰 가설, 질문지, 획득하고자 하는 인사이트 등을 준비했다. 어레인지 이외에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과 권한이 주어졌고, 그래서인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오퍼레이션 팀의 조언대로 각 고객사별 히스토리를 파악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질문도 고객사별로 전혀 다르게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고객사 다섯 곳 중 네 곳이 랜딩 페이지 안에 숨어 있습니다! 어디어디어디일까요 ( •̀ .̫ •́ )✧


그렇게 2-3주의 기간 동안 그리팅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기업 고객사와 다섯 건, 두들린의 피플팀과 두 건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기업 규모, 업종, 사용 기간, 이용 플랜 등이 제각기 다른 고객사들과의 인터뷰를 주도하면서, 채용담당자라는 특정 고객군의 니즈를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B2B와 B2C의 차이. 출처=https://www.thebalancesmb.com/b2b-vs-b2c-marketing-2295828


이는 두들린이라는 B2B 기업의 PO가 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뚜렷한 장점이었다. 시장/고객이 필요로 하는 핏이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B2C와 달리, B2B는 이미 사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존재하는 시장에 어떻게 하면 추가적인 가치를 풀어낼지 고민한다.


나로선 채용담당자들이 채용 프로세스에 할애하는 불필요한 비용, 시간, 노력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사업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편으로써 고객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어 무척 보람되고 뜻깊었다. 결국 B2B는 고객들이 일상이 아닌 실무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고, 실제 업무에서 벌어지는 크리티컬한 Pain Point에 대해 고민하는 PO로 역할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 제품 좋은 거,

세상 사람들 다 알아야 해!



또한 해당 기능 외에도 그리팅 제품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제품 팀이 고생하며 기능 개발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보니, "우리 제품을 더 잘 알리고 싶다!"라는 욕심이 자연스레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의 소기 목적을 달성하면 "이번에 그리팅에 이런 기능이 추가됐는데 알고 계신가요?", "이 기능이 정말 좋은데, 혹시 사용하고 계신가요?", "사용하지 않고 계신다면, 이런 이점이 있는데 사용해보시는 건 어떤가요?"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따른 피드백과 칭찬을 슬랙 채널에 공유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두들린의 슬랙에는 #voc_칭찬 채널이 따로 존재한다^-^b)



일례로 나는 고객사 인터뷰 막바지에 항상 그리팅의 채용사이트 제작 기능을 홍보했다. 채용사이트 제작 기능을 활용하면 기업은 코딩 없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자사만의 특성을 살린 채용사이트를 구축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최근 IT 스타트업에서 가장 흔한 채용사이트 제작 방식인 노션 + 우피 조합에 비하여 디자인적&개발적 퀄리티가 뛰어나며, 또 그리팅의 채용관리 시스템과의 연계되어 편리함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인턴 생활을 하고 있던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구직자의 시선을 갖고 그리팅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채용사이트 제작 기능으로 만들어진 기업들의 채용사이트는 앞서 언급한 노션 + 우피에 비해 훨씬 정돈된 인상을 주었다. 또, 채용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 해당 기업의 채용브랜딩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래서 고객 인터뷰에서도 직접 노트북으로 고객사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 같은 채용사이트 제작 기능 내 꿀팁(?)들을 열심히 방출했다. (그 과정에서 채용사이트 제작 기능에 관한 작은 이슈를 발견하기도 해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호다닥 개발자들에게 해당 사항을 전달했다...! Y.Y)




"저랑 같이 책 읽으실래요?"


마지막으로 가벼운 북살롱롱이라는 사내 북클럽을 꾸려나갔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업무와는 별개의 활동이었지만, 매주 화요일 오전 9시 30분 탕비실에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정말이지 작고 소중한 모임이었다.



위 사진은 지난 5월에 열렸던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강 작가님, 김영하 작가님, 천선란 작가님에게 싸인을 받으며 행복에 겨워 있는(ㅋㅋ) 나의 모습이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에는 축소되어 진행됐던 만큼, 간만에 수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황홀했던 날의 기록이다. 그만큼이나 독서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런데 웬 걸. 두들린은 자기계발비용이 무제한이었다. 그래서 업무와 관련된 독서를 하고 싶을 땐 비품으로 신청해서 원하는 책이면 뭐든지 읽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입사한 지 1-2주 쯤 되었을 무렵, 혼자서 책을 읽던 나는 온보딩을 도와주셨던 피플팀의 M님과 대화를 하다가 "저희, 같이 책 읽을까요?"라는 말을 꺼내게 됐고, 그렇게 두들린 최초의 커뮤니티(!)인 가벼운 북살롱롱을 시작하게 됐다.


업무와 연관된 <OKR>, <블리츠스케일링> 같은 책부터 인문, 문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도서들이 소개되었다(●'◡'●)


처음에는 M님과 나 둘뿐이었지만, 리서치 엔지니어 H님, 세일즈 매니저 P님, 프로덕트 디자이너 L님 등 "아침에 탕비실에서 무슨 대화를 저렇게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에 하나둘 이끌렸고, 이런저런 인원 변동이 있던 끝에 3-4명 정도의 인원으로 내가 인턴으로 지내는 내내 꾸준히 운영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모임이었지만, 가벼운 북살롱롱은 구성원들과 동반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도 했다. 커리어 성장과 내적 성장, 그리고 친밀감 성장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톡톡이 누릴 수 있었다. 위 사진과 같이 노션 페이지도 따로 만들어서 본격적인 모임(?)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했다. 역시 나는 어딜 가나 커뮤니티에 살고 커뮤니티에 죽는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런 순간들이 모여 두들린에서의 3개월이 완성되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근거를 덧붙여 기획하고, 팀원들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이끌어내고,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함께하고, 기능을 릴리즈하고,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더 좋은 피드백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과정이 반짝반짝 빛나는 조각으로 남았다.






3. 리스타트(Re-Start)를 위하여


퇴사 당일에는 과분한 작별인사를 받았습니다... (ಥ _ ಥ)


그리고 그렇게 3개월이 끝났고, 인턴은 종료되었다. 인턴 기간 중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변화가 있었는데, 포스팅을 마무리할 무렵에야 언급하게 되었다. 나는 애초에 PM(Product Manager)로 입사했으나, 중간에 직무명이 바뀌어 PO(Product Owner)가 되었다.


출처=https://blog.toss.im/article/next-agile-with-pm


PM과 PO의 차이는 <토스, 넥스트 애자일을 고민하다>(참고)라는 포스팅에 잘 정리되어 있다. 한 줄 요약하자면, PO는 해결할 문제들이 잔뜩 쌓여 있는 신대륙을 찾기 위해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애초에 내가 PM/PO/서비스 기획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정말 PM/PO/서비스 기획자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나는 중학생 때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이후로 약 십여 년 동안, 어딜 가나 글밥을 먹고 살 거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학창 시절,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신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나의 그런 당돌함(?)을 보고선 해주셨던 말이 있다. "은미야. 넌 어딜 가나 글을 읽고 쓸 운명인 거 같다."



그러나 스물다섯이 된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며 과연 그 운명대로 살고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 문예창작을 대학 전공으로 삼은 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입학한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실기로 실력을 다진 다른 학생들의 글을 보며 좌절하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글을 쓰길 반복했다. 글로는 밥 벌어 먹고 살 자신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그 순간에도 나는 글을 너무도 사랑했다.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중입니다


다시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대목으로 돌아가볼까? 요즘 내가 뭘 하면서 지내고 있는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중이야". 내가 지나온 길이 있다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그 자국이 단지 '자국'으로만 남지 않고, 그곳을 뒤따라올 다른 사람들과, 언젠가 뒤돌아 왔던 곳을 되짚어갈 나 자신을 위해 길을 반듯하게 닦아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https://worryzero.tistory.com/500)에 소개된 나의 포스팅


코드스테이츠 멘토였던 수수나님께 받은 링크드인 DM


원티드 메인 페이지에서 나의 포스팅을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ˍ⊙)


특히 보람을 느끼는 부분은 나의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가 널리 알려지는 순간이다. 이런 기분은 대학교 동기들처럼 작가의 길을 걸어야만 느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니! 역시 끝의 끝에서도 길은 새롭게 열리는 법이다. (참고로 이건 내 삶의 모토 같은 문장이다. 정말이지 끝의 끝에서도 길은 열리는 법이다.)


사실은 인턴이 끝나고, 답답한 마음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저 앞으로도 PM/PO/서비스 기획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기획 직무 중에서도 꼭 PM/PO/서비스 기획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그리고 자신감을 찾는 게 별안간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답변자 세 명을 꼽아보기로 한다.




이런 운명이라면

순응해도 좋아



먼저, 오랜만에 등장한 나의 최측근 지인 개발자 A씨는 위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ㅋㅋ)을 가정했다. 대학생일 때 콘텐츠 마케팅 직무에도 관심이 있던 터라 최근 마케터 채용 공고를 몇 개 찾아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카톡에 나는 어떻게 대답했냐면...



그러하다...ㅋㅋㅋ 역시 '모 아니면 도'와 같은 강력한 결단이 필요할 때는 밸런스 게임이 직빵이다.


또, 얼마 전에는 코드스테이츠 PMB 10기 동기 S님과 오랫동안 통화를 하게 됐다. 그때 PM/PO/서비스 기획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각자가 꾸려갈 취업 로드맵에 대한 이야기를 무진장 나누었는데, 그때 S님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강점 하나를 짚어주었다. 바로 자기 PR에 소질이 있다는 것이다.


부트캠프 기간 동안 나를 보며 자기 PR을 잘한다고 느껴왔는데, 이제야 말을 하게 된다고 덧붙이셨다. 그때, 두들린에서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 제품'을 PR하기 위해 목청을 높이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내가 과몰입(?)하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키울 자신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개발자 A씨와의 카톡에서 깨달았듯 마케터가 아닌, 우리 제품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PM/PO/서비스 기획자로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두들린에서 나에게 많은 것을, 정말 많은 것을,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꼽을래도 모자랄 만큼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그리팅 PO K님. K님은 내가 오기 전 그리팅의 유일한 PO였고, 이제는 다시 유일한 PO가 되신 분이다(ㅋㅋ...). K님은 퇴사 선물로 PO의 필독서 <프로덕트 오너(2020)>와 편지 한 장을 건네주셨다. 거기에 써 있던 문장들 중 나의 눈에 팍 꽂혔던 건, "은미님이 계속 PO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결론적으로, 모두 내가 PM/PO/서비스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꾸려가는 것을 응원하고 있다. 조금은 불확실하고, 약간은 설레고, 또 어딘가는 불안할지라도 나는 계속 사랑하는 제품을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길을 닦아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혼자 앞서나가는 퍼스트 러너(First Runner)가 아닌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가 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려고 한다. 그러니 글을 읽고 쓸 운명은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운명이라면 순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고했다. 나 자신!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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