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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May 10. 2019

워킹맘의 감정조절방법

#잔뜩 움츠리고 위축된 자아에게 날개를


바닥으로 치닫고 있을 때는 제가 이토록 아파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어떠한 시점인지 ‘이게 바닥이구나.’ 싶더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정신과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그 지점, 딛고 있는 땅 마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끝이 어딘지 모르게 추락하는 모습이 상상되며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딛고 있는 곳은 이미 땅 속 깊은 곳이었고, 저를 간신히 받쳐주고 있는 중간 지점이었습니다. 자아를 초월한 의식 상태의 최은미가 저 멀리서 잔뜩 웅크리고 위축된 최은미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닥에 금이 갈 것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은 위축된 저의 자아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딛고 위로 올라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과를 다니고 어느 정도 마음이 회복이 되자 선택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사실 옵션은 많지 않습니다. 심플하게 보면 우리의 삶이 가진 선택지는 늘 두 가지뿐입니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남거나 남지 않는 것입니다. 부서에 남거나, 떠나야 합니다. 또는 회사에 남거나, 떠나야 합니다. 세부적인 조정사항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어떤 의사 결정을 할지는 본인만이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나에게 있다는 삶의 실존적인 측면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화남, 짜증, 기쁨과 같은 감정은 조절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개입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Gross는 감정조절 모델 (Influential model of emotion regulation)을 통해 감정은 조절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언제 개입하느냐에 따라서 감정 조절 전략을 5가지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사전 예방적 전략 개입입니다. 이는 감정 생성 프로세스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 즉 애초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전에 미리 개입하여 감정 경험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살 첫째가 낮잠을 안 자고 유치원에서 하원한 날이면, 배고픔과 졸림이 동시에 몰려와서 떼를 부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특별활동을 하느라 낮잠을 자고 오지 않는 날이면, 빨리 잘 수 있도록 주완이를 대충 씻기고 대충 먹이고 잡자리에 눕힙니다. 이렇게 하면 떼를 부리는 것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는 회사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팀장님께서 다음 달 매출 계획을 A방향으로 지시하셔서 작성했는데, 보고 때 임원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왜 매출 계획을 A로 했는지 물으십니다. 몇 번의 당혹스러운 경험을 겪은 이후 B안, C 안을 작성해가서 갑작스러운 배신에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준비합니다. 사전 예방적 전략 개입은 예상되는 상황에 미리 대처하여, 부정적이거나 생리적인 감정 반응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자원 소모도 적은 방법입니다. 우리가 충분히 건강하고, 잔여 에너지가 있다면 사전 예방적 전략 개입을 증가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두 번째는 상황 선택 전략입니다. 이는 기본적인 감정 반응이나 생리적 반응은 이미 활성화되었지만, 이후 문제 상황을 선택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문제 중심 대처 방법입니다. 한 번은 유관부서 분께서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격양되셔서 다짜고짜 화를 내시며 저에게 전화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러신 적이 처음이었지만, 저는 과거 여러 번 각기 다른 분들에게 유사한 경험을 겪고 난 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 대처하기 위한 스크립트를 혼자 작성하고 시뮬레이션까지 해 본 상태였습니다. (저는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스크립트를 써야 하는 겁쟁이 쫄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머리가 하얘져서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머릿속에서 많이 그려왔던 상황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랑 싸우시자는 건가요, 일을 하시자는 건가요? 지금 너무 감정적이셔서 대화가 불가능하니, 상식적인 수준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 때 다시 전화 주세요. 먼저 끊겠습니다.”


이렇게 전화를 끊으면 보통 바로 다시 전화가 옵니다. 더 화가 나서 머리 끝까지 흥분한 상태로 말입니다. 그러면 같은 대사를 반복하고 전화를 또 먼저 끊으면 됩니다. 이쯤까지 하면 보통 몇 시간 후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업무 이야기를 하며 전화가 옵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다짜고짜 화를 내는 상황에 제 얼굴이 벌게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상황은 이미 발생했지만, 이후 제 감정을 지켜주기 위해 중심이 되고 있는 문제 상황을 피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상황 조정 전략입니다. 이는 상황 선택 전략과 동일하게 기본적인 감정 반응이나 생리적 반응은 활성화된 상태이지만, 문제 상황에 속한 나와 타인의 정서를 다루며 감정을 조절하는 정서 중심 대처 방법입니다. 위와 같이 다짜고짜 전화기 건너로 화를 내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급하고 중요한 사업 이슈일 경우에는 무작정 전화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화난 동료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친분이 쌓인 유관부서 분일 경우에도 왜 이렇게 까지 감정이 상했는지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상대방의 화난 감정을 해결하고자 노력합니다. 문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정서 상황을 다루는 정서 중심 전략을 통해 제 감정도 지켜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주의력 배치 전략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문제 상황에서 제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루는 파트장님이 워킹맘이 일을 하려면 육아는 내려놓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일에 올인하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 수준은 맞춰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엄마가 야근을 해야지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 아니겠냐고도 덧붙이십니다. 그런 날은 파트장님이 신고 오신 구두를 가만히 쳐다봅니다. 구두 끝이 살짝 까진 것도 보이고, 광이 나는 얼굴과 다르게 발등은 건조해서 까칠한 것도 보입니다. 핏줄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유심히 살펴봅니다. 가끔은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메뉴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제 생각에 빠져있으면 상황이 종료되어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은 인지 변화 전략입니다. 이는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상황을 학습 기회로 재구조화하는 인지적 전략을 의미합니다. 인지 변화 전략은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중 '주지화'와 닮아 있기도 합니다. 감정적으로 동요를 불러일으키거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사건 또는 상황에 대하여 정서적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지 변화 전략은 부정적 상황을 자기 발전에 활용하는 건설적인 방법이지만, 저를 비롯하여 제 주변의 많은 워킹맘들은 이를 역효과가 나게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이성적 전환시켜 빨리 해결하는 것이 프로페셔널한 것이고, 감정적인 것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정은 온전히, 그리고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면 사라집니다. 화남, 슬픔, 억울함 모두 그 자리에서 충분히 깊이 들어갔다 나오면 없어집니다. 오히려 자꾸 표면에서 처내려고 하면 쌓인지도 모르게 쌓였다가 이유도 모른 채 폭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있기 이전, 작게는 무례한 전화를 받거나 끊거나를, 크게는 제가 부서에 남거나 떠나거나를, 회사에 남거나 떠나거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서를 바꾸는 것은 실패를 의미했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경력단절을 의미했습니다. 조용히 이직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점심을 먹으며 수근덕거리는 소재가 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닥을 찍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었고, 삶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에 겁먹고 회피하거나 방어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내 삶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던 견디기, 성실하기, 책임감 지키기의 전략들을 버리고, 여태까지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새로운 방법들의 효과성에 대한 검증해 볼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삶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모험을 시작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었던 2년 전보다, 오늘 하루가 훨씬 더 만족스럽고 자유함을 느낍니다.



우리 엄마들, 오늘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주말은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딸도 아닌 자신으로,

팀장을, 팀원을, 남편을, 아이를 위함이 아닌 깊은 곳에서 잔뜩 움츠리고 위축되 있는 자아를 위한 시간을 꼭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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