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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un 19. 2023

나는 4. 혹은 클래식 2.

음악 선생님은 노래시험을 악기 연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하교하자마자 행방이 묘연했던 내 플루트를 찾느라 온 집안을 들쑤셨고 마침내 찾았다. 동요 몇 곡 즐겁게 부를 수 있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보니 상황이 달라져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과 그들의 점수가 부러웠던 나는 어릴 적 갖고 놀던 서양 피리를 최선을 다해 불었다. 반짝이는 은코팅 암스트롱 플루트는 나에게 평소보다 약간 더 후한 점수를 넘겨주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선생님은 가끔씩 애들을 줄 세워 음악 감상실로 몰고 갔다. 클래식 음악 감상시간은 늘 배고프고, 늘 잠이 쏟아졌던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휴식할 수 있는 고마운 시간. "자유로운 자세로 감상하기 바란다."라는 말을 남기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시면, 아이들은 약속한 듯 두 팔을 접어 책상 위에 놓고 손이 겹쳐지는 부분쯤에 머리를 돌려 철퍼덕 올렸다. 이곳저곳 키득대는 소리도 잠잠해지고 모두들 취침모드로 들어갈 때 나는 종종 깨어있었다. 어렸을 때 듣던 익숙한 곡이 나오면 그냥 좋았다. 음악감상실은 사실 시청각실이었는데 아주 가끔 음악과 함께 세계의 명소 같은 영상을 띠워주기도 했다. 나는 그냥 듣기만 했다.


팝송에 빠져 자발적으로 클래식을 찾지 않던 고등학생 시절에 질리도록 들었던 클래식 곡이 있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들으면 "이 곡!"이라고 소리칠 수 있는 "그 곡"의 제목이 지금 생각나지 않아 안타깝다. 조별로 선곡하고 안무를 정해 군무를 만드는 것이 음악 시간의 과제요 시험으로 정해졌다. 예닐곱 명 정도로 모아진 친구들과 연습을 하려니 수업이 끝났거나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 어딘가에 모여야 했다. 양쪽에서 사뿐사뿐 걸어 나와 음악에 맞추어 둥글게 원을 만들어 돌기도 하다가, 두줄로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점프로 마무리하며 5분도 넘게 춤추었다. 자주색 체육복을 입고서! 시험날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고, 연습하며 깔깔대던 것만 기억이 난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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