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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Sep 12. 2023

한 달 미국여행이라니


* 한 달 미국여행이라니

아니, 그곳에 친척이 사는 것도 아니고(친척이 있어도 그렇지!) 수 십 년 만에, 한 달씩이나 미국에 다녀오자는 남편의 말에 처음엔 시큰둥했으나 결국은 미국의 6개 다른 지역을 머물다 왔다. 길게는 댓새, 짧게는 하루 이틀 씩 지내며 무려 11개 주를 관통해서 그 한 달을 쏜살같이 보내고 돌아왔다.


* 여행의 공식 목적은 콘퍼런스 참석

우리의 항공비를 지원하시겠다는 검소하신 초청자님은 일정보다 일찍 와도 숙식은 언제나 가능하니 좋은 가격의 비행기표를 찾아보라고 했다. 8월 중순 닷새정도의 공식일정을 마지막으로 잡고 항공권의 가격이 낮은 순으로 날자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여름휴가 여행피크가 시작되기 직전인 7월 중순의 어느 날에 딱 70만 원가량 싼 그야말로 베스트 프라이스를 찾았다. 그렇게 출발과 도착일이 정해졌다.


* 워싱턴 DC    

남편은 곧장 최종목적지로 갈 것이 아니라, 이참에 미국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자고 했다. 듣고 보니 모두 그리운 이들이다. 먼저 남편의 대학 동기들과 청년 시절을 함께 보냈던 교회의 친구들이 모여있는 워싱턴으로 연락했다. 일주일 가량 머물 집이 정해졌고 세세한 일정은 친구들과 만들어 가기로 했다. 곳곳을 번갈아 관광해 주었던 옛 동지들의 집과 일터에서 우리는 몸뿐만이 아니라 수 십 년 전의 청량했던 마음들과도 재회했다. 볼 때마다 뭉클하고 감사했다.


*SNS의 활약!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다음 일정의 텍사스로 행 비행기 시간을 살피던 중에 내가 포스팅한 사진을 본 미국인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희가 있는 곳에서 이곳까지 4시간 드라이브 밖에 안돼! 너무 보고 싶다! 노스 캐롤라이나로 와!" 부랴부랴 일정을 조정하고 남편은 생전처음으로 미국 대륙을 드라이브로 이동한다는 도전을 했는데 처음 몇 시간은 내가 더 떨렸다. 그리고 노스 캐롤라이나까지 실제로는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했다.


* 친근한 노스캐롤라이나

 특별한 친분이 있는 미국인 부부 몇 가정이 살고 있고, 국제 결혼한 친구도 있는 각별한 곳이다.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청년시절 맺은 인연들. 바랜 머리칼이며 주름진 눈매와 달라진 몸의 태가 서로를 낯설게 하지 못했다. 그리웠던 눈과 눈을 맞추고 귀에 익은 목소리로 말하고 듣고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 텍사스 달라스행 비행기를 탔다.


*텍사스 툴사와 아칸소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 스프링필드.

홈스쿨을 하던 때에 미국인 선배 홈스쿨 가정이 한국에 초청되어 그 경험과 노하우를 들는 모임들이 있었다. 우리가 호스트 했던 가정을 만나려고 툴사로 갔다. 생각과 삶에 변함이 없는 옛 친구와 많이 달라진 그의 아내와 성인이 된 자녀를 각각 다른 날에 만나 아주 길게 이야기했다. 세월이 이토록 흐른 후에도 한국에서 맺었던 가족 간의 우정과 추억은 여전했고 온 마음으로 피차의 사랑과 격려를 마음껏 나누며 울고 웃었다.


*아칸소, 인디애나폴리스

아칸소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교포 홈스쿨러 아빠는 우리가 이동할 때마다 운전을 맡아 주었다. 마침 방학기간이어서 가능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동포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던 도로와 옥수수밭, 그리고 영화에서 본 듯한 다양한 미국집들이 눈에 선하다. 애초에 관광이 목적이 아니었던 여행이라 워싱턴에서 미술관이며 백악관 주변과 몇 명소를 보았던 것도 선물 같았는데, 인디애나 폴리스의 한 인도계 미국인 가족 (역시 한국에 머물렀던 남편의 동료) 전체와 함께  Creation Museum과 Noah's Ark를 다녀온 것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 최종 목적지, 텍사스 빅샌디는 건식 사우나

콘퍼런스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 이 여행의 계기가 된 텍사스 빅샌디에 도착했다. 바깥은 정말 더웠다. 우리나라의 여름이 습식 사우나라면 여기는 건식이라고 할까? 그리고 실내는 어디든 너무 추웠다. 옛 대학 기숙사를 개조한 곳으로써 우리에게는 호텔객실 느낌이었던 숙소에서 이불을 끝까지 올려 덮고 잠을 잤다. 콘퍼런스 장소까지 걸어가는 거리여서 편리하게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그래도 양산을 챙겨가길 정말 잘했음)콘퍼런스와 관련된 사람들을 또 아주 많이 만나고 이야기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9년간 살면서 남편과 함께 일했던 미국인 상사와 그의 가족, 특별히 한국에서 가정분만으로 태어난 아들이 벌써 십 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어찌나 반갑고 사랑스럽고 기뻤는지 모른다.


* 인천공항에서

내가 요리하지 않아도 때맞추어 챙겨 먹을 수 있었던 호사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에 내린 인천공항에서 나는 빨리 작고 조그만 우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도착한 후 3일 내내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 만 끓여 먹으며 우리 집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손수 대구탕, 삼겹살... 까지 해 먹고 나니 이제 살 것 같다.


사실 한 달의 부부동반 여행보다 한 달 솔로의 자유를 꿈꾸며 남편만 보낼까 내심 고민했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리웠지만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지인들이 각자의 곳에서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생의 굴곡을 헤쳐나갔고 또 견디면서 누리면서 사는 모습을 둘이 함께 듣고 보고 온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연락을 이어가며 살자고 다짐했던 것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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