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동안 문득문득 양순이가 보고 싶었다. 자기 원룸을 비워두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양순이를 돌보고 있는 딸 덕에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우리가 떠난 직후부터 이틀 동안 잘 먹지도 않고, 그 귀여운 얼굴에 나는 우울해요 를 잔뜩 담은 채, 현관 앞에만 쭈그려 있었다고 했다. 불러도 꿈쩍없어 애를 태우던 3일째 되는 날 "이건 아니다. 나도 살아야지.!" 깨달음을 얻었는지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딸아이에게 다가오는 반전을 보였다는 양순이는 집에 돌아와 보니, 아침저녁 산책에다 넉넉하게 놀아준 딸과 완전 짝짜꿍이 되어있었다. 우리 양순이는 영리하고 예쁜 실버토이푸들이다.
우리 집에 온 사연은 이미 기록한 적이 있다. 번식장의 모견으로 잦은 출산의 흔적이 그대로 배에 남아있는 이 녀석의 배를 쓰다듬을 때면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니?" 하는 낮은 웅얼거림이 날숨과 함께 절로 나온다. 그러나 낳고 빼앗기기를 반복했을 그 지긋지긋한 번식장에서 양순이는 꼬물대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핥아줄 때의 기억이 행복으로 남아있는지 배를 만져줄 때 가장 좋아한다. 심지어 앞발로 우리 손을 제 배 쪽으로 유도한다. 티브이에 등장한 갓 태어난 강아지의 낑낑대는 새끼들 소리에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반응했던 양순이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주인을 잃었던, 주인에게 버려졌던, 거리에서 구조된 유기견 모카와 함께했던 세월에서 체득한 사랑의 기술과는 다른 무엇이 양순이에게는 필요했다.
구조단체에서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양쪽 귀는 치료받는 중에 가족이 되었다. 스케일링을 하면서 충치가 심했던 앞니는 모두 발치되었고, 송곳니는 남았지만 몇 개 안 되는 어금니와 잇몸이 너무 상해있었다. 짖음이 거슬린다고 이미 성대수술 당한 상태에서 구조된 터라 우리는 양순이의 참 멍멍 소리를 못 듣고 갈라지는 헛헛한 쇳소리만 듣는다.
가족이 된 후, 긁음 때문에 방문한 동물병원에서는 단백질 알레르기가 의심된다고 해서 가수분해 사료로 바꾸고 서너 달이 지나니 효과가 보이긴 했다. 그러나 눈가는 여전히 분홍빛이었고 귀는 계속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드디어 지난주 양쪽 귀 완치판정을 받았다. 시간이 걸린 이유가 아토피도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얼마간 매달 1회씩 맞으면 아토피도 해결될 수 있다는 주사도 한방 맞고 왔다. 집에서 하는 매일 양치로 해결이 되지 않는 치아관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밖에서는 대부분 실외배변 없이 긴장으로 늘 헥헥거리며 나의 보폭에 맞추어 걷는다. 마치 능숙하게 훈련된 산책견처럼 나의 다리 곁에 바짝 붙여 걷는 양순이를 보는 사람들은 양순이의 빛나는 외모를 칭찬하는데 나는 이제 절절한 양순이의 사연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죠? 너무 예쁘고 착한 녀석이에요!"라고 만 한다.
다만, 남편과 아직 친해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대부분의 번식장에서 사육자가 중년의 남자라고 하니 두려워하는 것을 예상은 했으나 벌써 반년이 지났어도 다가가기는커녕 기겁을 하고 피한다. 남편은 한번 만져보고 싶다며 속상해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던 거니?” 양순이의 배를 쓰다듬을 때 했던 나의 혼잣말을 종종 똑같이 한다. 내가 일터에서 돌아올 때면노을을 뒤로하고 아빠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와서 매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회했던 우리 모카처럼, 내가 아직 잠든 새벽에 아빠와 단둘이 즐거운 산책을 다녀왔던 여전히 사무치게 그리운 우리 모카처럼 양순이와도 그런 추억을 쌓을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