솨아아! 샤워해드에서 쏟아지는 뜨끈한 물이 정수리를 시작으로 뒤통수와 얼굴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내린다. 머리칼 속속들이 적셔졌을 때에 두어 번 펌프로 샴푸 거품을 만들어 머리를 감는다. 두피까지 꼼꼼히 마사지하고 여러 번 헹구어내면 일단의 노곤함도 씻겨내리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컨디셔너를 머리칼 구석구석에 바르면서 비누로 갈까? 바디샴푸로 갈까? 잠시 생각한다.
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인의 청결을 장담하는 남편이 있지만, 우리 집 샤워 선반은 목욕제품들로 빼곡하다. 가끔 집에 올 때 사용하는 독립한 딸아이의 아담한 크기의 제품들이 맨 앞에 있고, 그 뒤로 내 것이 그리고 엄마의 바디 샴푸가 벽 쪽으로 있다.
엄마는 병원 가기 전날 목욕하는 것을 필수로 여기셨다. 의사 선생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도 하고 혹시나 보일지 모를 피부각질이 부끄러워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의 목욕날은 내게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거동이 힘들어질수록 더 그랬다. 다만 뿌연 김서림 속에서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목욕 내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를 꺼내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당장의 손주들 이야기로 흥이 돋던 엄마에게는 좋았던 시간임이 확실했다.
목욕의 마무리는 바디샴푸로 온몸에 거품을 내고 따뜻한 물로 여러 번 헹구어 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코끝에 은은하게 풍겨 오르는 그 바디샴푸의 향기는 한참이나 엄마 냄새에 입혀있었다. "힘들었지? 고생했다." 그리고 "고맙다! 개운하다!" 했던 엄마가 떠오르면, 나는 엄마의 바디샴푸를 타월에 담아 나를 씻는다. 엄마가 떠나시고 해가 바뀌었어도 나는 샤워를 하다가 가끔씩 운다. 어릴 적 나를 씻겨주던 엄마, 내가 씻겨드렸던 엄마가 똑같이 그리워서 운다. “엄마, 미안해, 엄마, 고마워…” 하다가 다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쏟아지는 맑은 물로 한참을 헹구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