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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an 09. 2024

피식

정말 한 겨울이다. 눈 오는 날이 흔하다. 오늘도 펑펑 내렸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신났는데... 애들이 어렸을 때까지도 너무 좋아 눈 맞으러 함께 달려 나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물론 "와! 눈 온다!" 탄성은 나왔지만 "오늘도 양순이랑 산책은 힘들겠네..." 우물거리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각각 다른 곳에 둥지 튼 다 큰 아이들이 "안전하게 일 보고 귀가해야 할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덥다, 덥다 했어도 나는 여름이 좋다. 옷값도 여름이 덜 든다. 값싼 겨울 옷은 무겁고, 가벼우면 춥다. 가볍고 따스한 겨울 옷은 너무 비싸다. 몸이 추우면 마음이 쉬이 추워진다. 돈 내고 즐겨본 겨울 레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다녔던 눈 썰매장이 유일한데 한순간 미끄러지며 내려가는 그 스릴을 애들보다 더 즐겼다. 다만 다시 썰매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게 지겨워지면 그만하고 집에 왔다. 요즘의 눈 썰매장 사정은 전혀 모른다. 벌써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쌀쌀하지만 맑았던 얼마 전 어느 날, 양순이와 함께 걷던 중이었다. 살짝 경사진 내리막 끝 신호등 옆에서 중년의 딸과 노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두 분이 내려오는 우리(나와 양순이)를 보고 있었다. 워낙 미모가 출중한 '양순이'를 바라보는 보통의 사람들의 시선은 늘 너그러웠으며 혹 반려견주라도 만나면 열에 아홉은 양순이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러면 나는 익숙한 미소로 응답했다.


쌀쌀하지만 맑고 햇살이 좋던 그날, 중년과 노년의 그녀들은 먼저 양순이를 보고 환히 웃으셨다. "아이고, 예쁘네~~!" 그리곤 나를 보셨다가 또 양순이를 보셨다."아이고~, 강아지랑 주인이 똑같네! 그렇네~! 엄마 닮아 예쁘구나!" 하셨다. 걸어 내려오던 속도대로 걷는 중에 받은 예기치 못한 과찬에 다시 뒤돌아 인사하기가 좀 그래서 나 만 들리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감사합니다." 했다. 이 나이에 예쁘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개가 나를 닮아 예쁘다는 말에 신이 나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발걸음도 가벼웠다.


눈 때문에 산책 못 나간 오늘 그날의 칭찬이 생각나서 또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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