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할머니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만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다. 말문이 트여 종알대기 시작할 때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외갓집에 갔었다. 꼬부랑 산길을 수없이 돌아 오르고 내리는 버스는 덜컹이고 몸은 휘청였고 엉덩이는 들썩였다. 그것이 재미있다고 나는 까르르 웃다가 또 길이 잠잠해지면 다시 자다 깨다 하며 갔던 먼 길이었다.
엄마는 정말 힘겨울 때 할머니를 찾았던 듯싶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만나면 붙들고 울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나도 찔끔 눈물이 날라치면 할머니는 맛난 음식을 해준다며 나도 함께 달랬다. 시골집 마당 끝 토끼장 안에 살던 그 토끼 중 한 마리가 밥상에 올랐다.
나를 안고 이렇게 많이 컸냐고 대견해하시며 사랑해 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여전히 어릴 때 고질병인 해소천식으로 괴롭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할머니가 떠나시고도 엄마에게 참기 힘든 새로운 날이 찾아오면 엄마는 할머니 산소에 엎드려 "엄마~ 엄마~!" 하며 한참을 울고 오시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이 마흔셋에 홀로 되신 엄마는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쉰다섯 살의 젊은 할머니가 되었다.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거의 매일 출근하듯 들렀다가 밤이 되어서야 가셨다. 딸 만 셋을 낳은 우리 엄마는 정말 온 정성을 다해 내 아들을 돌보아 주셨다. 매끼마다 엄마가 해주시는 뜨끈한 미역국과 밥을 푸짐히 먹고 수유를 하며 몸조리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2년 터울로 딸과 아들을 더 낳았고 그때마다 내 곁에 계셨다. 여동생들이 모두 결혼하고 정말 혼자되신 엄마와 나는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세 딸과 세 사위 그리고 손주 셋과 손녀 셋을 남기시고 우리 엄마는 두해 전에 곁을 떠나셨다.
오는 8월에 나는 외할머니가 된다. 헤아려보니 엄마보다 십 년 늦게 할머니가 된다.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못지않게 놀랍고 기쁘다. 돋보기를 쓰고 신식 아기용품을 공부하고 있다가 우선 좋은 동화책들을 사모으고 있다. 한 권씩 읽으면서 손주를 무릎에 앉힐 그날을 상상한다. 돌아오는 설에 동화책을 딸애에게 줄 생각이다. 엄마가 먼저 아름다운 동화를 마음에 담아놓으며 아기를 기다리면 좋지 않을까 해서이다. 마음껏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가 떠난 후, 할머니 하면 사랑이 떠오르면 좋겠다. 우리 엄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