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땅이 좋았는지 첫해부터 누런 호박이 여러 개 열려서 그 집에 사는 내내 호박죽을 자주 끓여 먹었다. 찹쌀이 눌지 않도록 천천히 휘졌다가 죽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조심해야 한다. 예측불허 튀어 오른 죽 한 점에 여기저기를 데인 후에야 목이 긴 고무장갑을 끼고 죽을 완성했다. 변덕이 죽 끓는 듯하다 하면 나는 호박죽이 생각난다.
따스하다 바람 불다 비 내리고 눈이 왔다. 어디로 튈지 모를 며칠을 지나니 오늘 아침은 말할 수 없이 고요하고 청명하다. 뜨거운 여름을 향해 변덕이 기승하는 정말 봄이다.
겨울 동안 잠들어 꾸던 꿈, 새삼스럽지 않은 소박한 그 꿈들을 하나씩 깨우고 있다. 바쁜 중에도 한글공부에 쉼이 없는 어여쁜 며느리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트북 옆으로 '왕초보를 위한 오늘부터 한 줄 스페인어' 책을 꺼내놓았다. '거인의 노트' 인생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말하는 김익한 기록학자의 이야기를 완독하고 나면 매번 놓치고 아까와했던 꼬마들과의 에피소드도 쌓아질 것이다. 변덕이 죽 끓듯 찾아오는 게으름과 맞서 점점 박해지는 희소식을 받아들이면서 욕심 없이 낙심 없이 뜨거운 여름 맞을 준비를 하자. 숙제 말고 놀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