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by 조은미

딸애의 생일에 나는 또 꽃다발을 받았다. 2.65킬로그램의 작은 아기가 자라서 고맙다며 나에게 꽃을 준다. 올봄엔 두 다발이다. 작약과 튤립 송이들을 맑은 화병에 가득히 담았다. 서로 다른 매력의 꽃들에 눈길이 갈 때마다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 튤립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가 이번엔 왜 튤립인지 물었다. 아버지가 해외를 다녀오시면서 받은 문구류 선물의 튤립 캐릭터가 참 예뻤다고... 그것을 보고 따라 그리면서 놀다가 반해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나는 평화롭고 풍요로왔던 오래전 그리움을 단정한 튤립에 담아 간직하였었나 보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딸은 자기 이야기를 했다. 꽃집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약은 매번 비싸서 사지 못했던 아쉬운 꽃이었단다. 언젠가부터 아침 일찍 꽃시장에 가서 안고 왔는데, 올해에는 남편에게 받았다고 좋아했다. 넉넉하고 다정했던 나와 아버지와의 그 시절 추억이 튤립과 연동되었다면, 내 딸은 결핍을 이긴 소소한 행복을 작약을 보며 누리는 듯하다.


국민 조경 아이템 철쭉꽃이 아파트 단지를 알록인다. 아기와 함께 걷던 젊은 엄마가 철쭉을 가리키며 진달래라고 말해줄 때,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오지랖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러나 수줍은 진달래를 언제 보았는지 나도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잔잔한 꽃도 좋다. 작은 꽃들은 모여 있어야 예쁘다. 남산 중턱의 학교를 향해 걸어 오르던 작은 발걸음이 멈추는 때가 있었다. 보라색, 흰색의 라일락과 아카시아 나무 아래를 지날 때이다. 고개를 한껏 들고서 매달려있는 작은 꽃다발들을 바라보며 상큼 달콤한 꽃향기를 맡느라고 그랬다. 오래된 그날들은 분명히 나의 순간이었으나 너무 아득해서 꿈 만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그러셨다. 평화롭고 시름 몰랐던 엄마의 어린 시절이 꼭 꿈을 꾼 것 같다고... 그 말을 곱씹지도 못하고 이만큼 살고 나니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한참을 즐겨 입다가 낡아져 버려진 잔꽃무늬 블라우스가 문득 생각난다. 냉큼 뛰어가 옷장을 열어보니 검은색 바탕에 하얀 꽃들이 흩어져 있는 원피스는 남아있다. 올해에도 입어야지. 내가 걸을 때마다 작은 꽃들이 한들한들 거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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