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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Apr 02. 2022

아이들의 인생, 음악 그 첫발

홈스쿨 이야기

첫째가 고른 첫 악기는 클래식 기타였다. 기타의 선율 안에 오케스트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직접 감상하고 싶은 기타리스트의 공연 관람권이 너무 비쌌다. 우리는 가족회의를 해서 첫째만 가기로 했으나, 큰 아이는 결정을 미루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연주자가 다른 곳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연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이들 셋 모두 데리고 기타 연주를 듣기 위해 '평촌 아트홀'을 찾았다.


연주 후, 공연을 주최했던 아트홀 홍보자로 나선 장일범 방송인이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광고를 했다. '평촌 아트홀' 개관 기념으로 서양음악의 뒤안길 '바로크에서 윤이상까지'라는 '아침 음악회!’ 관람권도 1인 오천 원 정도로 우리가 감당할 만했다. 3월부터 12월 총 19회 매달 격주 수요일 오전 11시! 우리는 바로크 음악부터, 고전, 낭만파를 거쳐 민족주의 음악, 프랑스 음악과 현대 음악 브리튼을 시작으로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멋진 과목이 탄생했다.


단 한 번의 무대도 놓치지 않았다. 연주자들의 호흡과 손끝 동작을 느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다양한 곡들을 감상했다. 아침에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자리는 늘 넉넉했다. 태교의 하나로 클래식을 감상하러 온 듯 불룩한 배를 안고 온 임산부들을 보니 흐뭇했다.


일산에서 평촌 아트홀까지 가는 길은 멀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게 곡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집에서 미리 듣고 갔다. 그러면 현장에서  살아있는 감상을   있어서였다. 아는 만큼 이듯이 들은 만큼 더 즐길 수 있. 집으로 오는 길은  흐뭇하고 만족한 시간이다. 연주장 근처 식당에서 흔치 않은 외식이 격주로 이루어졌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안에서 종종 낮잠을 잤다. 운전하는 나에게도 졸음이 올라오려고 하면 나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미래를 떠올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밀려오던 잠이 냉큼 달아났다.




플루트는 둘째가 선택한 악기이다.

내가 어려서 잠시 배운 악기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사주신 나의 첫 플루트는 집안이 무너졌을 때 팔아서 쌀을 사며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시절이 그리워 돈을 모아 중고로 악기를 장만했고 어느 날에 교회의 찬양팀에 함께하게 되었다. 엄마의 아마추어 플루트 소리는 아이들에게는 친숙한 노래가 되었다.


딸아이는 반짝이는 목관악기 플루트를 잡았다. 이 악기는 호흡으로 소리를 낸다. 노래와 같다. 화가 나거나 언짢은 채로 노래를 하기 힘든 것처럼 플루트는 마음을, 호흡을 다잡아야 아름다운 소리로 화답한다.

성실한 둘째는 플루트와 신실한 친구가 되었다.


막내는 스케치북에 바이올린을 그렸다. 음악회에 다니면서 바이올린에 눈과 귀가 닿았던 모양이다. 현악기는 배우기도 익히기도 힘들다는 선입관이 있어서 정말 배우고 싶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원한다고 쉽게 다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는 세뱃돈으로 악기를 샀다. 바이올린은 체격에 따라 크기를 바꾸어주어야 한다. 아래는 막내가 처음으로 풀 사이즈 바이올린을 바꾸고 기뻐하며 썼던 일기이다.



"이틀 전에 나는 세 번째 바이올린을 샀다.

이 바이올린은 새 바이올린이어서 길을 잘 들여야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악기를 잘 길들이려면 음정을 틀리지 않고 비브라토를 많이 하고 활을 많이 쓰고 천천히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첫 번째 바이올린은 중고 바이올린이었는데 내 세뱃돈으로 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바이올린을 만든 회사는 '심로'인데 세 번째 바이올린은 '이현우 수제 바이올린'이다. 이 바이올린의 가격은 백만 원 이상이라고 악기점 아저씨가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전에 쓰던 바이올린을 갖다주는 조건으로 85만 원에 샀다. 이 가격은 아빠가 기타를 파신 돈과 같다.


나는 산 지 이틀 만에 세 군데에 상처를 냈는데 왜냐하면 바이올린에 발라진 칠이 고급 바니쉬 칠이어서 전 악기에 비해 상처가 잘 난다. 엄마와 나는 선생님께서 나의 바이올린을 골라 주실 때 멋지게 연주를 하실 줄 알았는데 한 음, 한 음을 주의 깊게 들으시고 double stops를 하고 악기의 울림을 들으셨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음의 소리에 굉장히 까다로우셔서 나의 세 번째 바이올린을 고르시는데 악기점을 세 곳이나 들렸고 6개의 악기를 비교해 보셨다. 나는 내 악기가 정말 마음에 든다. 그래서 내 바이올린에 상처가 생겨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상처가 몇 번 나야지 자기 것이 되지 그렇지 않고 너무 조심스럽게 다루면 어디서 빌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기타를 팔아서 이 악기를 사주신 아빠께 정말로 감사하다. 나는 이 악기로 하나님께 영광을, 사람들에게는 격려를 드리는 연주를 훌륭하게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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