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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Apr 25. 2022

인생영화 새로고침

떨리는 목소리로 인생 영화가 '코다 CODA'로 바뀌었다고 알려준 딸의 말을 듣자마자 남편은 바로 예매했고, 우리는 다음날 극장에 갔다.



딸의 생일  코스는 '환기미술관'이다. 그녀의 최애 데이트 공간이 가족의  플레이스가  이곳은 마침 개관 30주년 기념 전시 중이었다. 예약된 티켓 셋을 받아 들고 나란히 입장했다. 눈에 익은 그림도 보였고 한참을 머물러 이런저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작품도 많았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소리가, 아니 음악이 들린다고 했다.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그랬다. 이후 나도 볼 때 늘 귀를 기울인다. 딸아이에게 전해 들은 김환기 화백의 아내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전시는 바로 아내의 기록 '미술관 일기'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주 심정과 근황을 글로 남겼던 화가와 그로 하여금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내조한 아내의 사랑이 돋보인다. 아내 김향안의 '미술관 일기'속에는 한국에, 서울에 '미술관'을 짓고자 했던 꿈이 이루어지는 여정이 담겨있었다.


부암동을 나와서 곧장 간 맛집은 작년 가을, 함께 덕수궁 산책을 마치고 딸애가 즉석에서 검색하여 찾은 곳이다. 잊을 수 없는 한식 백반을 이번에는 아빠도 맛보게 하자며 그리로 갔다. 흡족하게 식사하고 그 날 주인공의 원룸으로 향했다. 함께 생일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다. 딸아이는 밤에 '코다'를 볼 거라고 했다. 같이 볼까? 하니 아니란다. 혼자 만의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며 안아주고 왔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이 지나기 전에 인생영화 갱신 소식을 전했다.




다음날이다. 남편과 나는 극장에 나란히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해피벌스데이 투유' 노래가 나온다. 학생들의 음역을 확인하는 음악 선생님의 테스트 선곡이다. 생일 밤, 예상치 못했던 글로벌한 스크린 축하를 받은 딸애의 기분을 상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스토리 곳곳 설치된 웃음 장치에 남편과 나는 예외 없이 걸려들어 웃음을 터뜨렸지만, 농인 가족에 둘러싸인 녹록지 않은 십 대의 삶에 몰입되었고 노래를 좋아하는 딸아이의 마음의 소리마저 듣지 못하는 농인 부모의 무심함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는 못 듣는 아니 안 들리는 그들 만의 세상에 천천히 침수됐다. 몰랐던 세계다. 전율이 밀려오며 눈물을 나왔다.




우리 가정 학교의 이름은  '소리 홈스쿨'이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자. 삶에 메시지를 전하자. 사랑의 소리를 내자." 라며 지었다.


아이들이 실제로 소리를 낼 줄 몰랐다. 모두 음악을 전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삶이 그렇게 흘러갔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음악으로 뜻을 표현하고 또 읽어내는 일은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운 또 하나의 언어를 터득한 자부심과 기쁨을 누리게 되어 감사했다. 음악으로 용기와 치유와 즐거움과 행복을 주고받는 일은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여러 번 노래를 부르지만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듣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식구들이 함께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던 날들이 많이 쌓여있다. 이번에는 다른 날 다른 시에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우리의 결론은 비슷하게 마무리되었다.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사랑이 있다. '코다'는 아름다운 음악영화이지만 사실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사랑이야기이다. 음악의 힘을 조금 더 많이 안다고 느꼈던 마음은 그저 덤이었음을 확인했다. 세상에 사랑의 소리가 되는 것에 얹힌 덤... 영화가 깨닫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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