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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Sep 03. 2022

나의 엉성한 물 생활

물고기를 집에 들인 지 벌써 3년째이다.  혼자 관리가 만만한 아담한 크기의 어항 안에 첫 주인은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고약한 성격의 '베타'였다. 오래도록 독방을 누리다가 떠난 베타 다음 맞이한 '실버 샤크'는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고 그다음으로 온 '플래티'와 '구라미'그리고 '구피'가 그럭저럭 어울려 살며 그럴듯한 어항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베타는 아름다웠다. 파란색 몸통 위로 마치 만지면 우단 느낌일 것 같은 더 진한 파란색의 날렵한 얼굴과 아가미가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졌다. 몸보다 훨씬 넓고 길고 화려한 양 옆과 꼬리의 지느러미는 붉은빛이 섞여 보라색 물이 들어 있었고 물결 따라 하늘대는 그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한번 시선이 머물면 물멍에 빠지기 일쑤였다.


베타의 성질이 고약하다 함은 다른 물고기와 어울리지 못해서이다. 심지어 같은 어종을 보아도 서로 자신들의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있는 힘껏 펼쳐 과시하여 상대를 겁주며 공격한다.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필사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타에게 거울에 비친 자신과 경쟁을 시키는 것이 멋진 지느러미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되어있다. 장관이 될씀직한 각양각색 여러 마리의 베타가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볼 일은 없다고 하니 야속하다. 다만 그 못된 속성은 거울을 보며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쁜지를 물었던 백설공주의 새엄마 심기가 아니었나 맥락 없이 추측해본다.


수명은 2년 정도라는데 우리 베타는 어느 정도 크기가 완성되어 온 것으로 보아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간 듯하다. 그러나 치명적으로는 과식이 원인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쁜 베타가 뻐끔뻐끔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어느 날부터 양을 늘렸고 녀석은 주는 대로 다 먹더니 그만 배설을 멈추었다. 베타에게 변비가 치명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나서 아예 밥 주기를 중단했지만 아름다운 베타는 빵빵한 배를 한 채 죽었다.


어항을 비워둘 수는 없었다. 신비로웠지만 홀로 휘젓고 다니는 녀석을 보는 나는 쓸쓸했던 터라 몇 가지 어종으로 섞어 꾸밀 참이었다. '실버샤크'이름처럼 천상 무서운 상어 모습을 하고 반짝이는 이 놈은 완전 순둥이라고 해서 끌렸다. 크기가 작지 않아 우선 한 마리만 담았다. 서로 뽀뽀하는 모습으로 보여 '키씽 구라미'로 알려진 구라미 류가 무난할 거라고 해서 몇 마리를 더했다. 이름과 달리 주둥이를 마주대는 것은 점잖게 싸우는 거라고 주인이 알려주었는데 서로 해할 정도가 아니라고 해서 같이 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의 기미는 며칠 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순한 정도가 아니라 겁이 너무 많은 실버 샤크가 자꾸 놀라서 어항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안타깝게도 나의 어항 위 쪽에는 조명 갓만 있고 전체를 덮는 뚜껑은 없었다. 낮에 생긴 몇 번의 불상사는 민첩한 대처로 구조에 성공했으나 밤새 일어난 단 한 번의 사고로 다음날 아침 '마른 멸치'처럼 변해버린 '샤크'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뚜껑을 주문하려던 차에 생긴 일이었다.


본의 아니게  베타에게처럼 실버 샤크에게 너무 미안하다.


집에 어항이 있다면 거의 빠지지 않는 흔한 어종 '구피'를 요즈음 세심히 보고 있다. 번식을 했기 때문이다.

수초 몇 가지를 추가하여 어항 한 귀퉁이가 조금 우거지게 되었더니 그제야 티끌만한 새끼들을 낳기 시작했다. 알에서 부화한 것이 아니라 새끼의 모습으로 나타난 겨자씨 보다도 작은 것들의 생존을 의아해하기 무섭게 그 한 무더기의 꼬물이들은 며칠 되지 않아 서서히 사라졌다. 첫 배에는 단 한 마리만 살아남아 몸 크기를 키우고 있다. 얼마 후에 쏟아지듯 또 새로운 움직임들이 나타났다. 검색해보니 사라지는 것은 잡아먹히는 것이라고 한다. 낳고 또 잡아먹는다고??!  문득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길렀던 햄스터의 악몽이 떠올랐다. 새끼를 낳았다고 기특해하고 잠시 가족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후 발견한 새끼 포식의 현장에 기겁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기를 수가 없었다.


다시 구피 이야기로 돌아와서...

적극적으로 치어들을 구조 해야 하나 여부를 정해야 했는데 결론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로 정했다. 엄청난 번식력 때문에 치어들을 따로 분리시켜 모두 키우면 얼마 되지 않아 어항이 구피로 다 차오른다는 말을 들어서다. 다만 더 자주 새끼 쪽으로 가는 큰 놈들을 쫓고 있는 중이다


공평하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는 상황이 물속 생들에게도 있다. 알았다면 막을 수 있는 일도 있었고 알지만 내버려 두기로 한 일도 있다. 나는 어항을 아직은 치울 생각이 없다. 물때를 닦아주고 이끼도 걷어내어 깨끗한 물질을 유지하고 공기도 넉넉히 뿜어 넣고 먹이도 적당량 뿌려준다. 넓지 않은 공간을 이곳저곳 정신없이 팔랑대고 돌아다니는 구피 떼나 각각의 다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플래티와 구라미가 유유히 살아가는 것을 바라본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깨는 우리 강아지 모카 다음으로 조명을 켜면서 아침인사를 하고 불을 끄며 하루를 마감하는 물속 식구들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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