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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미 Jan 17. 2023

가위를 내려놓으며

막내아들이 많이 어렸을 때,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일이 고역이었다. 낯선 이가 다가와 제 머리칼에 손을 대면 울어댔다. 미용사 손에 들려있는 가위나 이발기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평소 떼쟁이가 아닌데 유독 싫어했다. 지금 같으면 머리카락이 길어도 한동안 아이가 마음을 편해지길 기다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당시에는 급했다.


내가 직접 미용을 배워 아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깎아야지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침 감사하게도 근처 구민회관에서 무료 미용강좌가 열렸다. 배우러 다니는 석 달 동안 친정엄마가 잠깐씩 아이들을 봐주셨다. 내가 익힌 기본 실기 이후 다음 단계는 전문 미용인이 되는 순서였지만 나는 더 배울 마음이 없었다. 아들의 머리만 해결하면 되었다.


이후 큰 아들과 남편의 머리까지 담당하게 되어 나 말고는 모두 미용실에 갈 일이 없어졌다. 두 아들들이 대학 갈 즈음까지 그랬다. 큰 아들의 머리카락은 나와 같은 부드러운 직모여서 그 앞에 서면 항상 조금 더 긴장했고, 남편과 막내는 살짝 실수를 해도 표가 잘 나지 않는 곱슬기 있는 굵은 머리칼이어서 편했다. 딸아이의 모질도 아빠를 닮았지만 짧게 커트할 일은 없어서 긴 머리를 방울로 묶거나 땋아주기 만 했다.


어느 날, 딸 친구의 엄마들이 한 집에 모여 리본 머리띠와 핀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당장 참여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양한 리본을 곱게 접어 글루건으로 핀과 띠에 붙이면서 한층 더 귀여워질 아이를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딸은 왕나비 리본과 꽃모양이 조롱조롱 달린 머리 밴드며 디자인도 새로운 리본 핀을 매일매일 바꿔가며 하고 다녔다.


우리 집 막둥이 모카의 털은 꼬불꼬불하다. 녀석의 미용담당도 당연히 나였다. 관리에 소홀하면 푸들이 삽살개가 된다. 강아지 전용가위와 이발기를 마련해서 때가 되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예쁘게 잘라주었다. 다듬기를 다 마칠 때까지 짖음도 입질도 없이 가만히 기다려주던 천사 같은 우리 아기였다.


가위를 놓았다. 모카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나의 최장기 단골 고객인 남편의 머리단장 장소는 바뀌었다. 집 이발은 지난달로 마감했다. 작정했던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새 단지의 미용실을 찾아 머리손질을 하고 온 나를 보고 예쁘다고 하길래 내가 먼저 권했다. 원장님의 실력이 좋은 것 같으니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 줄어든 숱과 가늘어진 머릿결에 나도 남편도 신경이 쓰였는데 미용실에 다녀온 후에는 서로 보며  만족했다. 나는 이제 쉬어야겠다.


오래도록 수고한 서너 개의 가위와 이발기를 바라보았다.  안에 깃든 추억이 떠오르니 따스하기도 쓸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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