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이 많이 어렸을 때,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일이 고역이었다. 낯선 이가 다가와 제 머리칼에 손을 대면 울어댔다. 미용사 손에 들려있는 가위나 이발기 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평소 떼쟁이가 아닌데 유독 싫어했다. 지금 같으면 머리카락이 길어도 한동안 아이가 마음을 편해지길 기다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당시에는 급했다.
내가 직접 미용을 배워 아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깎아야지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침 감사하게도 근처 구민회관에서 무료 미용강좌가 열렸다. 배우러 다니는 석 달 동안 친정엄마가 잠깐씩 아이들을 봐주셨다. 내가 익힌 기본 실기 이후 다음 단계는 전문 미용인이 되는 순서였지만 나는 더 배울 마음이 없었다. 아들의 머리만 해결하면 되었다.
이후 큰 아들과 남편의 머리까지 담당하게 되어 나 말고는 모두 미용실에 갈 일이 없어졌다. 두 아들들이 대학 갈 즈음까지 그랬다. 큰 아들의 머리카락은 나와 같은 부드러운 직모여서 그 앞에 서면 항상 조금 더 긴장했고, 남편과 막내는 살짝 실수를 해도 표가 잘 나지 않는 곱슬기 있는 굵은 머리칼이어서 편했다. 딸아이의 모질도 아빠를 닮았지만 짧게 커트할 일은 없어서 긴 머리를 방울로 묶거나 땋아주기 만 했다.
어느 날, 딸 친구의 엄마들이 한 집에 모여 리본 머리띠와 핀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당장 참여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다양한 리본을 곱게 접어 글루건으로 핀과 띠에 붙이면서 한층 더 귀여워질 아이를 생각했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딸은 왕나비 리본과 꽃모양이 조롱조롱 달린 머리 밴드며 디자인도 새로운 리본 핀을 매일매일 바꿔가며 하고 다녔다.
우리 집 막둥이 모카의 털은 꼬불꼬불하다. 녀석의 미용담당도 당연히 나였다. 관리에 소홀하면 푸들이 삽살개가 된다. 강아지 전용가위와 이발기를 마련해서 때가 되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예쁘게 잘라주었다. 다듬기를 다 마칠 때까지 짖음도 입질도 없이 가만히 기다려주던 천사 같은 우리 아기였다.
가위를 놓았다. 모카는 하늘나라로 떠났고 나의 최장기 단골 고객인 남편의 머리단장 장소는 바뀌었다. 집 이발은 지난달로 마감했다. 작정했던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새 단지의 미용실을 찾아 머리손질을 하고 온 나를 보고 예쁘다고 하길래 내가 먼저 권했다. 원장님의 실력이 좋은 것 같으니 한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 줄어든 숱과 가늘어진 머릿결에 나도 남편도 신경이 쓰였는데 미용실에 다녀온 후에는 서로 보며 만족했다. 나는 이제 쉬어야겠다.
오래도록 수고한 서너 개의 가위와 이발기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깃든 추억이 떠오르니 따스하기도 쓸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