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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Aug 16. 2016

여행 이야기

비수기인 외과 병원으로의 여행 

서투른 주절거림인 나의 브런치가 피치 못해서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간편히 접하는 매거진이 아닌 자유로운 핸드폰 속의 브런치와 매거진으로 구분돼 있는 컴 속의 브런치...

 그러다 보니..

오른 발의 인대 재건 수술로 인하여서 밀려난 컴의 매거진...

거의 두 달을 넘게 방치 아닌 방치로 이어져버린....

까짓 어떠냐 

누구에게 보이려는 의도보다는 나의 기록인지. 일기인지.. 아무튼지....

그런 편한 마음으로 지난가을 시작했던 브런치 속의 매거진들...

나이 50줄을 넘어서고 보니 시간도 빨리 간다.

새삼 무슨 기록이냐. 엉망인 글 솜씨도 아닌 글로 어쩌면 또 다른 공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6월 말의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가볍게..

럭셔리 호텔 바캉스 가듯 우아하게 트렁크에 책, 티, 화장품, 속옷, 갈아입을 옷가지. 그리고 환자식의 수저까지 바리바리 집어넣고...

집의 몇 안 되는 식구들의 밑반찬까지 냉장고에 가득 만들어 냉장고를 채우곤,,,

노견은 식구들이 돌아가며 돌보다 병원에 맡기다 한다 해서 그냥 방치하곤...

트렁크를 싸들고 나 홀로 입원 수속을....

두어 달을 보조 깁스로 수술을 피해보려던 나의 분투는 그나마 다행히 왼발은 경과를 지켜보는 사오 항으로 이어진 거니 그저 감사일뿐...

더 솔직하자면.. 실인즉  시아버님께서 외과 의사 출신이셨다..

따라서 이런저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당사자인 나의 불편함에... 그냥 아무 에게도 알리지 않고 수술을 결정..

그렇다고 녹녹하게 정한 수술은 아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 활동이 많은 막내가 치료받던 병원이었고 지켜보는 몇 년 간의 신뢰가 가득한..

아무튼 조용히 몰래 그렇게 입원을 한 날이 정확히 6월 29일이었다.


나는 장녀에 범생이 출신이다.

소위 말하는 잔머리 굴리기와는 영 동떨어진...

그런데 말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50줄에 들어서서야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언젠가 내게 엄마보다 내가 더 닮은 것 같은 세째이모가 해 주신 말씀 하나..

인생은 50까지 연극이다...

크... 내 생각엔 지금부터 80이 넘어서까지. 내가 내 정신줄을 놓기 전까지가 오히려 연극이 아닐는지? ㅎ하는 생각을 한다

수수를 정하고 입원을 하고 나서야 세세한 수술 설명을 거꾸로 듣던 나는 하반신바취로 다른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 없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에게 간곡히 요청을 하는 중년 아줌마의 모양새였다.

즉, 저녁에 도착하는 옆지기 님께 보호자 동의서와 설명을 한 번 더 부탁한다는 엉뚱한 내용...


세 남자와 살다 보니(여기서 세 남자란 옆지기와 두 아들을 의미한다), 자고로 남자들이란 자꾸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자식에게는 잔소리가 되니 삼가야지만 , 옆지기에게는 세뇌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난 몸을 아껴야 할 젊은 시기엔 지나쳐버린 내 오류였다,,,

간호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늦은 저녁에 옆지기에게 설명과 사인을 다시 받아내는 상황을 연출해 주었다.

이른 저녁이 나오고 다음 날인 수술 날 오후까지는 금식인지라 오랜만의 병원에서의 환자식을 맛나게 먹고 셀카도 찍어가며 그렇게 입원 첫날은 나만의 조용한 휴가지로 생각하는 즐거운 놀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수술 날 이른 아침부터 전날 알레르기에서 한 번 걸린 항생제 때문에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수술실까지의 진행은 순조로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2013년부터 2014년까지의 전신마취 두 번의 큰 수술도 겪은 터라,,, 이번 발 수술은 진짜 내겐 휴가여행 같은 느낌이었다는 사실이.. 생각지도 못한 복병은 미리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술실에서 척추마취를 하곤 메스꺼움을 느꼈고 잠시 수면을 취하게 하신다는 마취 샘의 말씀에 스르르...

눈을 떠보니 도란도란 수술실의 주치 샘과 간호사들의 이야기 소리.. 그리고 샘께서 좋아하신다는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내 머리 위로는 찬란한 수술대의 조명이.... 날 반겨주었다.

사실 재주도 없는 글로 참 별걸 다 열거하고 있다고 생각도 되지만.. 모 이것도 나중에 또 다른 추억거리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절 거리는 지금의 나, 이다..

파바로티의 시원한 음색과 수술이 거의 마무리돼가는 듯한 분위기에 도취되고 실은 하반신은 느낌이 없어서 그분 위리에 그냥 취해 버린 나..

거기다 지금 생각함 망신살인... 아줌마의 근성, 하나..


주치 샘의 한 마디가 내 뇌리를 쳤다

은미 씨  연골이 예뻐요,,

아차... 이 대사에 그만  홀딱.....


간호사에게 어머 그래요?? 보고 싶네요 저두 제 연골,,, 이래 버린 거다..

아뿔싸.....

덩달아 샘과 간호사 들께서 핸드폰을 찾으시더니 찰칵찰칵 이어지는 촬영 씬....

메시지로 전송해 드릴 꼐요 호호호,,,,,


그만 이쁘다는 한 마디에 아직 미련이 남아있던 50대 아줌마가 실언을 한 거란 말이다...

크크크  지금 떠 올려도    얼마나 우수꽝 스런 풍경인가 말이다.....

아니 그런가?

모르겠다 한 70 즈음돼서 그래도 그때 그런 연출이 즐겁고 흥겨운 것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바랄 뿐.....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운반되어 진나.

옆지기에게 아픈 시늉을 하려고 보니 아차..

수술실의 대화 내용은 아니더라도 호호호 웃던 상황이 문 밖의 옆지기에게 들렸던 모양...

그 웃음으로 그만 쉬운 수술로 돼버린 ,,,,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가며 쏟아져오는 감각은...

눈물이 쏟아지는 통증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던........

숨조차 쉬기 싫을 정도의...


전신마취 후로도 기억에 없던 통증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울며 지내는 동안 잠시 잠시 코를 골 돈 옆지기 님..

실은 간병인을 구하려던 상황이었는데 근 이년이 돼가는 지방 근무 중인 옆지기 님께서 이번엔 자진하고 간병을 하시겠다 하시니... 말리기도 우습고,,, 인생 연극 중에 모 그래... 하던 차라...

불편을 감수하고 내가 묵인한....


걸을 수도 없고 발을 드을 수도 없는 통증에 처음으로 소변기를 사용할 정도의 상황에  조금은 미안함도 곁들여지던 시간 여행.... 하나였던 기억...


수술 다음 날 , 옆지기도 거꾸로 주치 샘께 수술 내용을 듣고 , 샘 역시도 수술 전이 아닌 수술 후의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초래했지만  이 모든 것이 내겐 이다음의 추억 여행거리로 남아버렸다는 사실이다..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환경이라  조금은 보통의 환자나 환자 보호자와는 다른 처지라... 더욱이...

어른 들게 말씀을 안 드린 상황이라 상황 정리를 부탁하는 차원에서 샘의 수술 설명을 잘 전달해 달라는 내 의도 도 또 빗나가는 상황으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진부해졌다..

이 병원 여행기에서의 주인공들은 10대와 20대의 아가씨 들이었는데....



수술 3일째부터 6인실로 이동이 있었다.

아직 통증으로 정신이 없던 나여서 입원실을 옮기며 멍 해 있었는데 며칠 뒤 목발을 짚으며 화장실을 오가다 문득 내 입원실 앞의 이름과 숫자가 커다랗게 클로즈 업 되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문병을 다녀간 내 동창 부부의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고, 입원실의 두 아가씨가 내게 던진 대화 때문이기도 했지만...

김은 미 51

박ㅇㅇ 17

이 ㅇㅇ 21

17,21, 옆의 51이란 숫자의 의미 말이다..


17세의 환자에게 51세의 환자가 한 방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

1, 아,, 할머니가 오시는구나

2 일찍 전등을 꺼야겠구나

3 조용히 해야겠구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딱 이 세 가지였다는 사실..


내가 들어설 때 얼핏 기억나는 말이  

어머 젊으시네요......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내 나이보다 결코 젊다는 사실이 아니라 10대의 생각에는 50대는 할머니라는 사실이다.

바꿔놓고 생각해보아도 맞다 그것이 진실인 것이다..

병실로 들어서던 동창 역시 주춤했다는 그 숫자들의 조화...


21세의 그녀 역시 내 바로 앞의 침대를 사용했는데 참 친절하고 빠른 행동으로 날 도와주곤 했다..

그녀들과의 잠시 며칠간이 내겐 어쩌면 또 다른 공부의 시간이었다.

내 나이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 , 대화를 필요로 하던,,

두 여인이 퇴원하는 전 날...

조심스레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그리고 705호실 방이라는 카톡방도 개설해버리게 되는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못 말리는 할머니?

아줌마?

내가 그여 둘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주 조금은 먼저 그대들의 나이의 자녀를 겪어낸 엄마로서, 선생님으로서, 같은 여자로서의 몇 마디가 다 였는데....

어쩻든 705호실에서의 인연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갈 것이라는 사실


들고 온 책들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기 까진 2주간의 입원 중 겨우 5일 정도였던 기억..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한 친구들까지의 문병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외과 병원의 비수기가 이 여름.. 그리고 이 병원의 특성상 여름 시즌의 선수들이 부상으로 입원이든 수술이든 치료를 하러 오는 시기 이전에 용케도 내가 수술을 받은 것이다.

그 덕에 6인실을 때로는 2.3인이. 때로는 나 홀로 ,,,

퇴원 전날에서야 5인이 가득 차는 상황으로 아주 편한 휴가였다...


피주머니를 찬 채 수술 닷새째부터 시작된 근력운동 

사실 의무는 아니었다..

병실에서 보니 50대의 환자는 나이에 남자 한 분뿐인.. 거의 젊은 선수들을 다루는 병원인지라...

어찌 보면 내 아이들 같은 환자들과 체조를 하려다 보니 실은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기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두꺼운 얼굴로 참여했던 단체 근력운동시간..

이유?

1 수술이 성공적인 이후 내가  해야 할 상황 

2 피하던 수술이었으니 효과는 200배로 남겨야 하는 

3 사실 병원서의 긴 하루 중 30여분을 할애한다는 사실...

그 근력 체조는 6주가 된 지금도 3일을 빼곤 열심히 해내는 중이다..

이 사실은 내가 날 칭찬하는 일이다...



병원의 12층은 재활훈 현장이고 13층은 하늘 정원이다.

12층의 운동을 마치고 나 홀로 가끔 처음 써보는 서투른 목발에 주의하며 13층으로 올라가 음악을 크게 틀고 나만의 휴가를 또 다른 기분으로 즐겼다..

어떤 날은 먹고 싶다고 주문한 전기 통닭구이를 친구들과 들도 올라가 맑은 하늘과 구름을 보며 뜯어먹기도 하고....

트렁크를 들고 들어가던 날의 휴가 떠나는 아줌마를 기억해내며 통증을 잊어버리려고.... 말이다.

역시 그러길 잘 했다.

도심 한 복판의 13층의 비 온 뒤의 맑게 개인 7월 어느 저녁 날의 만찬.....

한 참 뒤에도 기억날 것이라는 믿음 하나다..


못된 베프들은 족발을 사들고 와서는 커다란 뼈다귀를 내 손에 쥐어놓곤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고,

소셜 쿠킹의 멤버 들은 각자 사들고 온 모둠 음식을 늘어놓고 수다를 떨고 웃다가 (그 날은 마침 나 혼자였다만) 간호사의 경고를 먹기도....

생각해봐라 40대 후반 50대의 중년을 달려가는 아줌마들이 그리 해맑게 웃을 일이 얼마나 되려나를....


40대엔 집집마다 10대들,,, 입시생  재수생,,, 등등으로 맘도 몸도 분주하고 지치고,

50대를 조금 넘어선 줌마들은 군대다, 취업이다 유학이다.. 등등.. 거기에 이제는 노령이신 부모님들  등등...

더해서 이제는 내 몸 여기저기서 신호를 보내온다..

문병을 온 친구들도 성치는 않다.

디스크 증세. 퇴행성 무릎관절. 백내장 초기... 등등..

암을 않아 수술한 케이스도 있고. 어깨 수술을 한 친구도 있고 여기저기가 아파도 웬 간 해선 병원을 찾게 되지 않는 우리네 상황들 말이다....

아니 그런가?



어쨌든 길면 길었던

짧으면 짧았던 2주간의 내 럭셔리 여행 , 내가 지은....

다행히 보험에서 3분의 2는 보상이 나왔지만... 가벼운 수술도, 값이 싼 수술도 아니었기에 일부러 내가 억지로 지어버린 일명,,, 럭셔리 여행이었다..


그 여행 속에서 또 다른 인연도 이어졌고, 뜻밖의 친구들의 맘도 읽어졌고,,,

제대하기까지도 바쁜 와중에 간간히 주말마다 와서 말없이 간병해주던 큰아이.. 옆지기...

마침 7월 12일이 큰아이의 제대 날이었다.

비록 카투사 군종이었어서 현역보다야 조금은 맘이 놓였던 게 사실인 나다..

군복을 입은 채 병실로 들어서서 큰 절을 하며 감사합니다 하던 큰아이...


4월 4일에 막 입대한 막내는 여자 친구를 통해 손편지를 보내왔다.

비록 여자 친구 덕에 받아 본 이쁜 편지지였지만...

어느 사이 20대 중반들을 달려가는 이제는 훌쩍 성장해버린 그들...


혼자 지내다 보니 조금의 배려에 아주 살짝 눈을 떠? 가는 옆지기....


나는 참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글을 읽으면서 무슨 자랑질이냐?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나 역시 51세와 11개월을 지내오면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냈다....


요즈음은 그냥 매일매일이 감사다  라는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매일매일이 우리에게 기적이듯이 말이다...

아니 그런가?

그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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