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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Nov 01. 2020

여행이야기

시월 하고도 삼십일일과 십일월 첫날

어쩌다 보니 이번 여정의 축이 남원이 돼 버렸다.

10월 하고도 마지막 날,

난 가수 이용님의 잊힌 계절의 가사를 읊조리며 ,

남원을 걷고 있었다.


내가 신혼을 보냈던 광양에서 남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모시고 왔던 남원의 그 희미한 시간들이 떠 올랐고, 지금의 여정을 함께하는 장남을 낳기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한 날이 공교롭게도 10월 31일이었었다.


음악을 전공한 난 내가 무척 예민한 줄 알았었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신  부모님의 귀한 첫 딸이었고, 내려놓거나 소리만 들려도 울어대던 손 많이 가는 까탈스러운 여자아이였다니까, 거기다 서울깍쟁이 소릴 들으며 성장한 나라서..


첫 아이는 예정된 날짜에 나오는 줄 만 알았었다.

하나 만 오 개월 시절의 아빠의 급작스런 죽음,

만 육 개월 차의 시조부님의 호상.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내가 아무리 태교에 신경을 썼던 시기였지만... 비켜가지 못한 탓일까?

허긴 아빠의 장례식 뒤에 장녀로서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도 많았었고 , 심지어 옆지기 마저 출장지에서 교통사고 소식까지 (별 탈은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사건사고의 연속이었으니  아무리 잘 먹어도 태아가 무럭무럭 크진 못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예정일 진찰실을 나오며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운 기억이 난다.

이유는 별것 아인 아직 태아가 나올 준비를 안 하네요라는...


아무튼지 그런 사유로 난 예정일 열흘 뒤인 1991뇬 10월 31일에 당당히 유도 분만을 하러  분만실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었다.


아니 근데 , 웬걸..

커튼 옆의 울부짖는 산모들의 소리와 달리 난 전혀 아프지도 않은 상태에 말똥말똥 말짱한 정신까지...

급기야 저녁 6시가 되니 금식이란다...

커튼 너머의 밤 담당  간호사들의 사과 깎는 소리와 사과 씹는 사각사각 소리에....

나에겐 아직 시작하지 않은 진통보다 그 소리들이 고통이었었다.

거기에 밤 새 테이프로 들려오던 노랫가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잊혀진 계절  말이다.


아무튼지 그렇게 긴긴 가을날의 저녁과 밤을 지새우고 새벽 녘에서야 제대로 된 진통이 시작되었고  밤 새 옆 산모가 못해낸 라마즈 호흡법을 난 그 긴 시월의 마지막 널 밤에 커튼 너머로 배워버려서 복식호흡을 열심히 따라 해 버린 탓인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3.0kg의 남아를 순산했었다.


마지막 진통이 파도처럼 몰려오던 그 11월의 첫날 아침에 아이의 '응애'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난 돌아가신 아빠가 떠올라 울어버렸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그런 나에게 건넨 말은

"사내아이라니까요? 왜 우셔요?"....


여행 이야기에 이 무슨 진통 이야기냐고 물어보시면.

마침 여행 한 곳이 내 엄마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이 가득하던 곳들이었고 , 거기다 장남의 귀빠진 날이 겹친 탓이라고 굳이 변명하려고 한다.


장남과의 오랜만의 여정

이제 오늘 11월 하고 첫날이 만으로 정확히 29세가 돼 버리는.

두 해 전의 짧은 여정이었던 제주 해군 관함식 시간과는 또 다른 성숙함과 의젓함이 묻어 나오는 그런.. 모습을 보며..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더 많은 세월을 먹어버렸구나 하는  


전망대가 올랐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남원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장면들이 있었다.

갓 한 살짜리의 장남과

오십 대 후반의 홀로 되셨던 내 엄마와의 추억여행 속으로 ,

그리고 성장하며 어찌 그리 내 아빠의 모습을 닮아버린 큰 아이의 모습에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까지 말이다.


코로나로 조심스러웠지만 가는 곳마다 적당한 사람들과의 스침 또한..


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아마도 이제 만 스물하고 아홉을 맞은 그도 굵은 마디가 생겨난 대나무처럼 나아가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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