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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Sep 26. 2015

나의 추억 센다이

게란말이와 나카지마 사치에상

얼마 전 심야식당을 보고 들어서던 막내의 한마디

'엄마 게란 말이 좀 해주셔요.'

일 년간 홀로 생활하다 잠시 돌아온 집에서 엄마의 역할이란 빨래와 먹을 것을 해주는  일뿐인지라..


계란 말이 하면 나에겐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 속의 아주 행복한 추억이 한 가지 떠오른다.


애들 아빠의 유학시절,

나 역시 못다 한 대학원 이후의 공부가 하고 팠던 욕망을 접어야 했었던 30대 초반.

현실은 내게 두 아이와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하러 가는 남편,,

그가 가는 일본의 동북대에는 음대가 없었거니와,, 아이들 을 돌보는 일과, 두 사람의 학자금으론 턱도 없는 형편이었던 상항 이었다.


아마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미친 듯 일어에 매달렸던 시간들이..

또 장녀의 책임의식 속의 나었기에 누구에겐가 무엇을 부탁하기보다는 찾아서 하던 내 습관 탓에 ,,

그리고 말이다.

현실은 늦게 귀가하는 늦깎이 박사과정 남편을 배재하고라도 어린 두 아이와 나를 건사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여러 상황과 내 성격, 그리고 음악이란 내 전공덕에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 속으로 쑤욱 빠져들어가는 일이 어렵지만은 않았엇는 지도 모른다.


97년 큰 아이가 쿠니미 유치원엘  입학했고, 거기서 만난 엄마들 중에 인형극을 같이 하면서 내 마음에 들어온 학부모가 한 분 계셨다.

나보다 5살이나 위엿던 나카지마상.

참 겸손하고 열심히 던 그녀에게 어느 순간부터인지 난 푹 빠져버렸던 기억.

그렇게 친해진 사치에상에게 배웠던 가정식 일본 다마고야키(たまごやき)는 지금도 내 맘 속의 그녀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98년 그녀 가족의 전근으로 동경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 해 여름 그녀의 외가인 나고야에 초대를 받았다.

유학생 가족의 생활은 뻔하다.

적은 생활비로  긴축을 해야 했고 그래서 아이들이 신칸센을 타 볼 기회는 더더우기 없었던 시절의 두 아이와 나만의 첫 기차 여행 이 그것도 저 남쪽 나고야까지로 이어졌던 추억,

두 아이는  그때의 나고야 교토의 신칸센 이후로 기차를 타자고 조르는 일이 없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에게 센다이에서부터 나고야 까지는 정말 길고 긴 여행 이었다.


긴 여행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로고, 오늘은 오롯이 그녀와의 추억 이야기이다.

귀국 전 마지막 여행지 역시 그녀이 집인 동경의 하치오지 엿으니까..

우연히도 그녀의 생일은 딱 내 생일과 2 틀의 차이를 갖고 있고 , 귀국한 해부터 지금까지의 손편지가 이어지고 있는 정말 내게는 소중하고도 소중한 그녀이다.

요리교실을 하면서, 일본어 식탁을 하면서 다마고야키를 가르치거나 만들 때면 어김없이 내 기억 속의 그리운 그녀 사치에상이 떠오른다.

이마카라모 요로시쿠네 사치에쨩..!!

(今からもよろしく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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