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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Oct 05. 2015

나의 추억 센다이

리츠코와 그 부모님과의 인연

리츠코를 떠올리면 환한 얼굴에 맑은 웃음의 20살의 젊은 청년이자 숙녀,

그리고 맑은 웃음 가득 찬양을 멋지게 불러대던 크리스차펠의 에배시간..

센다이 아오바구의 크리스차펠의 금요 예배는 항상 예쁜 공원인 미츠노쿠 공원을 가던 길의 시골  마을의 리츠코네 본가 옆의 가와사키의 작은 교회에서 였다.

가시는 길에 집에 있는 우리 세 식구를 꼭 데리고 가시던 목사님...

리츠코네 식당의 콘숲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이름도 잊어버린 호텔 주방장 출신의 멋쟁이 세프님께서 끓여주시던 그 달콤하고 고소하고 달달하던 콘숲의맛은 아무리 따라 해도 따라 할 수 가 없다.


항상 웃음 지으며 큰 목소리로 김 상김상  하며 부르던 리츠코는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 제자가 되어 버렸다.

발성 에 관한 지도를 부탁했고 , 나 역시 흔퀘히 즐겁게 리츠코와 발성 연습을 하던 작은 나의 시영 아파트. 모니와다이에서 말이다.

에밀리의 작은 마당이란 내 명함의 이름이나 블로그, 페북의 페이지의 이름은 모니와(もにわ)  즉 작은 마당이라는 내가 살던 마을의 이름이었다.

어떤 때는 쌀로 랫슨비를 대신하고, 어떤 때는 리츠코 본가의 맛있는 식사로 대접을 받던 내 30대의 추억..

참 겸손하신 부모님이셨다 리츠코의 부모님은..


언젠가 교회분들이 니코로 여행을 가게 되었던  일이 기억난다.

물론 유학생인 애아빠는 배제하고 나와 그 당시 5살 2살이던 아이 둘과 동행을 했는데 그 넓은 니코의 미니어처 마을 안에서 큰 아이를  잃어버렸다.

막내의 손을 아빠처럼 꼭 잡고 챙겨주시던 리츠코의 아버지. 자시나마 숨이 막힐 듯한 불안함에 큰 아이를 차던 시간에 정말 엄마 아빠처럼 나를 챙겨주시던 두 분은 잊을 수가 없다.

센다이 크리스챂ㄹ의 모든 분들은 임원들을 막론하고, 나이를 막론하고 어른부터 아이들 까지 내가 기억하는 한 참으로 겸손하신 분들이었다.


귀국 후 한 참이 지나서 단 한번 온 식구가 센다이를 방문했을 때..

인사를 간 우리 아이들에게 리츠코의 어머님께서 손에 쥐어 주셨던 참 큰  돈..

어쩌다 보니 그 당시 20살이던 리츠코가 목사님의 아내가 되어 신혼여행을 한국으로 방문했던 시간도 한 참을 흘러서  어제 38살의 생일을 보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 나이가 50이 넘었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 어머님이 그랬듯 나 역시 그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자고 싶고 , 또 예쁜 옷도 사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항상 맘만 보내고 있었는데....

올 해는 넘기지 말고 꼭 그래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스치는 가을 저녁이다.

리츠코사모님 항상 그 웃음 간직하시길...

요로시쿠네...

또한 부모님 역시 지금처럼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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