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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Dec 05. 2015

나의 또 다른 고향 센다이

큰 아이의 소중한 은사님 쿠마가이 선생님

1998년 센다이 아오바구 모니와 다이 모니와 소학교 신학기 4월..

1991년 생인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1996년 처음 도착한 센다이의 원룸에서 5살짜리 의젓한 큰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며 저 홀로 언어를 익혔다.

난 열성이신 내 엄마가 보내주신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가리켰을 뿐,,

일어는 저 혼자 익혀버린 큰아이. 

물론 쿠니미 유치원에서도 일본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일어를 습득하긴 했지만 

그 아이에게 유치원의 사오리 선생님 이후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또 한 분의 은사님과 만남이 시작된 그해 4월이었다.

일본의 전형적인 소도시의 공립학교였던 모니와 소학교.


일본에선 입학식 날 각 학년 새판에서 새 친구들과 새 선생님과 처음 만난 학부모들이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는다.

부시시하던 동네 엄마들이 그 날은 완벽한 일본인으로 치장을 하고 , 반 정도의 엄마들이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정성스레 화장을 하고 차려입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질세라 겁 없는 나는 이삿짐에 고이 넣어갔던 한복을 나홀로 용감하게 걸쳐 입고 갔던 기억...

그렇게 외국인은 한국인 한 명과 인도인 한  명뿐이던 그 해 1학년 어떤 반으로 배정을 받고 단체 사진을 찍던 기억..

마침 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그 당시엔 아마 40대 후반이시던 열정이 넘치시던 여선생님이셨던 쿠마가이 선생님이 셨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어머님들이 학교를 다니실 때와 지금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는 시점에서 뇌구조가 발전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머님들 시절의 한문 40자가 지금의 자녀들 에센 80자로 늘어났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그 80자의 한자를 다 적어보기만 할 수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한 칭찬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난 아직도 또렷이 내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너무나 확실한 상황을 말하는 그 말씀들이 말이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쿠마가이 선생님은 큰아이와의 두 해를 같이 공유해 주셨다.

그 당시의 소학교는 2년간 같은 반 아이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규칙이었지만, 담임은 1년씩 바뀌는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큰 아이는 같은 남임 선생님, 같은 친구들과 2년을 일본의 전형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었다.

미야기 현, 우리나라로 예르 들자면 

강원도  속초시쯤 되는 동네라 해얄지도...

미야기현에서는 매년 여름 겨울 방학을 이용해 몇몇의 선생님들께서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가며 , 자신들의 전쟁 시절을 죄스럽게 여기며 봉사하는 단체가 있었고 그 단체에 속한 선생님 중의 한 분이 셨던 내 아이의 담임 신 쿠마가이 선생님께서는 마침 199년 8월 잠시 한국의 일정이 계획돼 있으셨다.

우리 가족도 99년에 영국으로 이주가 거의 결정되었던 시기라 마침 1998년 여름은 잠시 처음으로 한국으로의 귀국이 스케줄에 있던 터라 선생님과 일정을 맞추어 하루의 일정을 같이 보냇 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질문이 하나 있었다.

'한국의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그것을 그렇게 많은 영어 교육 속에서 이야기를 하는가요?'

문득 난 말문이 막혀버렸던 기억..

왜냐? 고 물으면 

내가 알던 한국의 영어 열풍은 , 어떠한 한국 책을 먼저 기본으로 읽힌 상태에서 영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닌 반 이상은 맹목적인 영어의 열풍이었던 기억이기에 말문이 바로 열리지를 않았던 기억....


큰 아이는 책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특히나 초등학교 3학년에 영국으로의 이사가 캔슬되는 바람에 한국으로 귀국을 하고 나서 일본과 한국의 예민한 역사 관계 속으로 빠져들어버린 영향도 있지만.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아이였고, 또한 역사에 편파적으로 너무 빠져버렸던 기억도 있다.

그러한 그 아이가 항상 이야기한다

쿠마가이 선생님을 정말 존경한다고.

아마도 일본의 잘못을 아이들에게 솔직히 인정하고 시인해주신 선생님이셨기에 가능했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또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기에 아마 지금의 큰아이의 밑거름으로도 충분한 조건을 형성해 주셨던 분이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나의 어머니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나에게 확실하게 남겨주셨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만 있는 스승의 날에 난 큰 아이에게 일본의 두 선생님께 편지던 엽서던 전화를 같이 드렸던 시간을 소중히 다뤄왔다.

다행히도 이제는 큰아이가 저 혼자서 꼭 스승의 날에는 두 선생님께 전화를 드린다.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라는 커다란 행복은 그것을 잘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내 어머님께 감사한다.

또한 그것을 잘 이해해주고 또한 실천해 주는 큰아이에게도 감사한다..

멋들어진 글씨체로 편지를 보내주시는 쿠마가이 선생님 

이제는 60을 훌쩍 넘기셨지만, 내게도 여전히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시는 스승님이시다.

선생님과 청계천 길을, 큰 아이의 학교를 다시 같이 걸을 날을 기대해 본다.

건강하시길... 안부전화나 편지라도 보내야 할 즈음이 된 듯한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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