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늙은 딸 기순이와의 미국 생활
나에겐 14살짜리 늙은 페키니즈가 있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그래서 그녀(여기서는 잠시 페키니즈를 그녀라 칭하자)는 나에겐 딸이다.
2002년이던가 우연한 기회에 나에게 와준 페키니즈 4개월짜리..
그렇게 우리 옆에 왔던 그 페키니즈는 막내의 이름을 따라 기환이의 동생 기순이로 우리 식구가 되었고,
그 인연은 사람 못지 않은 소중함으로 우리에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갑작스런 미국 이사에 동행한 기순이.
매 달 26불짜리 보험을 들고 가끔 종합 겁진까지 받던 , 누군가는 개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좋다는 소리도 했지만, 우리에겐 한 식구인 그녀이다.
보통 개와 달리 거의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제 몸만 핥고 있는 , 개라고 하기엔 너무나 게으르기도 한...
매번 털을 깎고 목욕을 시키고 나면 내 허리가 빠지듯 아프기도 했지만. 그녀는 있는 자체로 우리 가족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한 기순이의 존재는 나에게 또 다른 행복이었다.
막내는 데리고 이 곳 저곳을 다니던 중간중간 옆자리에서 같이 다니ㅕ 나의 또 다른 외로움을 반으로 줄여주던 그녀,
그냥 바라만 보아도 (실인즉 말대꾸도 없으니) 그냥 포근한 내 딸이 되어주고 , 먼 타국 땅에서도 내 옆에 붙어 잇던 그녀
지금도 내 발 밑에서 살을 대어가며 코를 골곤 하지만..
미국을 가며 오며 잠시 그녀를 어찌해야나 하고 냉정히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 실은 그녀는 이제 나에겐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기순이를 산책시킬 때면 멀리서 백인들이 달려온다.
왜? 아마도 백인들에게 하얀 색은 기쁨인 듯,,
큐트 하면서 환호하는 그들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순이는 나의 자랑이기도 했다.
캐나다에 올라가서도 시누네 마당에서 커다란 3살짜리 웅이도 꼼짝을 못하는 사나움을 보이기도 했던 그녀.
매 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우리 집은 살아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어주던 그녀,
가자마자 잠시 맡기고 시카고를 다녀오니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멀리 지켜보던 그녀,
미국의 애견 호텔은 참 재미 잇는 곳이었다.
아이들 어릴 적 매트로 깔아 주었던 자동차 길 매트하며,
개들이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가 하면,,
아무튼 기순이로 인한 많은 추억들 역시 우리의 미국 생활기 중에 한 부분을 차지했던 기억들이다.
디트로이트 공항에서의 그녀의 패션 역시. 모든 이들의 환호를 들었던
웬만한 사람 보다 실은 기순이의 팔자가 사실 더 부러울 수 도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