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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Sep 26. 2015

디트로이트에서 9번째 정류장

노바이 하이스쿨(3)

노바이 하이 스쿨  우연히 막내의 모교가 되어버린 그 학교의 미식축구가 아닌 축구팀은 남팀과 여팀으로 구분된다.

남팀보다 경기에는 오히려 여자부 팀의 승리가 더 많았던 기록들이 학교의 한 벽에 장식되어있고,

학생들은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며 자존감 역시 높아지는 것을 나는 막내를 통해 경험했다.

이른 여름방학은 서머스쿨로 이어지고 그 서머의 끝자락인 8월이면 학생들이 마냥 달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

개학 전 모든 클래스의 기본인 트랙 반이 가장 먼저 개강을 한다.

즉, 머리를 쓰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몸을 사용하는는 체력과 정신력을 보강하는 것이 미국의 교육방식이라는 걸 그때야 깨달았고, 이래서 다들  이 곳을 동경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나 역시 갖게 되었다.


8월 테스트를 거쳐 주전 선수로 뽑힌 축구 부원들은 방과 후에 무조건 모여서 연습을 2시간 정도 갖는다.

10학년 2학기를 따라 잡기에도 버거운데 저걸 어찌 해나가려나 했던 엄마의 걱정은 뒤로 하고, 오히려 그들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운동을 통해서 미국 문화 속으로 스며드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들에게 연습은 또 하나의 공놀이일 뿐이었고, 시즌이 시작되어 시합이 있는 전날이면 마지막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부원들의 순 번 에 따라 학생들의 집에서 간단한 운동 뒤의 저녁 파티를 연다.

우리나라 교육의 생각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시험 전 날이면 밤을 새워서라도 문제를 더 풀고, 암기 위주인 앉은 뱅이 공부나 시합에 비하면 저들은 티무엌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식사와 함께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게임을 하기도 하고 수영장이 있는 저택인 경우는 수영을 하기도 하고, 따로 토론을 하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서로를 알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 그 서울 통해 시합에 나가 진행되는 시합 속에서 서로를 느끼고 하나가  되는...


늦게 동참한 막내는 미국 이름이 마크였다.

마크의 등번호는 넘버 8번이 였고 공격수였다.

그러나 한국식 축구와는 또 다른 미국식 축구를 적응하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린 듯 하지만, 일본 친구들과 인도 친구와 아랍친구와 미국 전형적인 하이틴들과의 교류는 아마도 앞으로의 어떤 시간에서든 마크 자신에게 커다란 힘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미시간의 가을은 짧지만 아름답고 춥다

9월의 오후 시합 6시부터 진행되는 시합은 바람이 불고 춥다.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친구들이라 학부모들은 파카를 하나씩 , 담요를 한 장씩 둘러가며 아이들을 지켜보며 응원을 한다.

9월부터 11월 초까지의 시즌 동안 12차례 정도의 시합이 조별로 진행되었던 기억.

유키짱과 나카지마짱과의 추억도 실은 마크와 그 친구들에 의해 나에게 보너스로 생겨진 관계이기도 했고 지금도 좋은 친구 관계로 유지하고 있는 또 다른 인연들이다.


노바이와 옆 마을인 노스빌은 굉장히 예민한 관계라도 한다.

노바이의 인구 중 10프로 이상이 아시아인 (일본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인 이유를  언급해야지만 일단 )이었던 반면 노쓰빌은 완전한 백인 미국인들의 마을이었다.

늦게 합류한 나는 몰랐던 그 예민한 반응은 마침 벌어진 두 학교의 축구부 으원인  축구장의 스탠드에서 벌어진다.

미국 아빠들의 힘 있는 응원, 스탠드 에 서서 소리 지르는 노쓰빌으아빠들과 노바이의 아빠들의 신경전부터 제3자로 바라보아도 웃음이 나올 만큼  진한 신경전이었던 기억이 있다.

어디든 민족 간의 갈등도, 각자 본인이나 아이들의 출신 학교에 대한  우월감도..


축구는 반이상이 몸사움이기도 한 운동이기에 가끔 돌연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응원을 하는 학부모들의 원칙  중 하나는 시합 도중 부상자가 스러지는 경우 , 부모를 막론하고 절대 스탠드에서 운동장으로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글쎄 아마도 우리나라 과잉 보호의 부모들이라면 스탠드를 뛰어 넘어서라도 달려갔을 법도 한데..

그들은 시합을 운영하는 운연팀들에게 맡긴 채 응원 서에서 그냥 숨죽이고 바라보곤 했다.

나 역시 가끔 가슴을 졸이면서도  

각 학교의 경기장에서의 시합보다 원정 경기인 경우의 사고가 실은 더 피부로 느껴지는데 마크에게도 딱 한 번 아주 위험한 순간이  도래했던 순간이 있었다.

시합의 후반부일은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할 예정이고. 오느르이 사진들은 반 년 늦게 온 큰 아이가 동생을 위해 찍어 준 사진들 몇 장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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