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에 간직된 좋은 느낌

by 고아함


추억 속에 간직된

좋은 느낌은

긍정의

평화로운 기운을 안겨준다.





버스가 노르웨이 국경에 접어들자 숲과 호수, 농작물이 자라는 드넓은 평원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직립 나무들이 조밀하게 늘어서 숲을 이루고, 그 숲을 돌아 맑은 계곡물이 크고 작은 돌들을 헤치며 흘렀다.

드문드문 농가가 스쳤다. 흰색과 검은색의 얼룩무늬 소떼가 풀밭에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었다.

양 떼도 군데군데 쉬거나 풀을 뜯는데, 어떤 양들은 삼삼오오 마실을 다녀오다 아예 도로변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열선이 깔린 도로에 배를 대고 일광욕을 즐기는 거란다.

기사는 양들이 다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 조심스레 운전을 했다.

전직 ‘디스크 쟈키’였다는 버스기사는 감미롭고 편안한 클래식 음악과 팝송을 들려주며 멋진 중저음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어를 잘 구사했고 영어도 유창하게 했다. 체격이 건장한 스웨덴인이었다. 감색 모자를 쓰고 흰 반팔 티 위에 노란 문양이 있는 네이비블루(navy blue) 조끼를 입었다.


멋진 자연 풍경이 펼쳐지는 도로 위를 달리며 간간히 휴게소에서 쉴 때면 음료와 자신의 할머니가 만들어 주었다는 쿠키까지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미모의 딸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잘 웃었고 유머스러웠으며 친절했다. 인생의 낭만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탁 트인 시야에 드넓은 호수가 펼쳐지며 몇 그루 나무만 심겨 있는 작은 섬 하나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평화롭게 보였다.

버스는 잠시 후 출발했고 기사는 또 다른 음악을 들려주며 가파른 산길을 내달렸다.

차창으로 연녹색의 이끼 낀 돌산들이 웅장하게 끝없이 펼쳐졌다. 태곳적 자연의 신비한 비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새하얀 솜이불처럼 잔설이 산등성을 덮고 있고, 아래로는 폭포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가파른 절벽을 타고 시원스레 쏟아졌다.

비탈진 곳에는 작은 풀들과 나무들이 옹기종기,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자갈들은 그 비탈을 따라 자연스럽게 굴러 떨어지다 멈추어 널브러져 있었다.

간간이 지붕에 풀들이 무성한 산막이 집들도 보였다. 주민들이 휴양하러 찾아와 지붕에 덧댄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밤하늘 별을 보고, 눈이 쌓일 땐 눈 녹을 때까지 며칠 몇 밤을 지내다 녹으면 하산해 돌아간다 했다.

그래서 주변에는 폭설 높이를 재기 위한 T자형 가는 나무 막대들이 군데군데 전봇대처럼 꽂혀 있다.

그리고 오동통통 살찐 양 떼도 이곳에 살며 보는 이에게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을 선사했다.

또다시 휴식을 취하고자 산 중턱에서 버스가 멈췄다. 산아래를 보니 아득한 절벽 아래로 물이 흘렀다.

산 길가에는 붉은 빛깔의 산딸기가 흐드러지게 나무에 달려있고, 블루베리도 여기저기 꽈리를 튼 듯 오밀조밀 무리 지어 있다.

벌레가 살지 않는 청정 자연환경이라 씻을 필요 없이 따 먹어도 된다 하여 먹어보니 새콤 달콤 맛있다.

맛과 향취가 미각을 돋우어 한껏 먹고 싶었지만, 서둘러 가야 할 목적지가 바빠 차에 올랐다.

기사는 협곡 산길을 조심스럽게 서행으로 운전했다.

플롬에 도착했다.

등산용 기차는 양옆의 산을 뒤로하며 가파르게 달려 요스포센 폭포에 정차했다. 낙차 93m의 거대한 폭포!

흰 포말로 거센 물소리를 쏟아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이 크게 울려 나왔다.

그러자 폭포를 뒤로 하고 주황색 옷차림을 한 요정이 나타나 춤을 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요정을 보려고 빠른 걸음으로 몰려들었다.

홀린 듯 그렇게 한동안 요정을 보는데, 한순간 홀연히 사라지더니 다른 곳에서 춤을 추는 것 아닌가.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리송해져 오는데 가이드가 귀띔해 준다.

요정들은 ‘로렐라이 전설’ 속 여인을 표현한 것으로 실상은 남자 두세 명이 여장을 하고 폭포 부근 바위에 숨어있다 서로 교대로 나타나 춤을 반복하는 거라고.

거대한 폭포의 비경과 함께 아련한 전설 속으로 들어간 묘한 즐거움이 있었다.

송네 피요르드로 향했다.

노르웨이 송네 피요르드는 바닷물이 깊은 산속 광막한 곳까지 흐르는 자연 절정의 비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배를 타고 협곡 속으로 들어서니 다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뱃길을 따라 이어지는 높고 가파른 절벽들은 장엄했다.

곳곳에 빙하가 녹은 물이 아름다운 폭포를 이루며 산 중턱 아래로 흘러내렸다.

물길을 따라 작고 아담한 집들이 있는 한적한 마을도 있고 드넓게 펼쳐지는 푸른 초장에선 옹기종기 양들이 모여 풀을 뜯고 있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려 구름과 비안개가 산자락과 뱃길 물 위에 드리워지니 운치 있는 비경이었다.


선착장에서 주인과 동행한 강아지 두 마리가 배에서 내리며 부슬비에 젖은 털의 물기를 힘차게 털어냈다.

강아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농부의 웃는 얼굴은 순박했고 행복해 보였다.


물과 산, 나무와 풀,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이 추억 속에 남아있다.

그때 그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조우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하고 자족하니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했다.


세상에서의 성취가 어떠하든 자연인으로서 자연을 마주한 시간은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세상의 잣대를 의식하고 고심할 필요가 없는 순수 자유의 나를 만났다.

그때 그곳에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추억 속에 간직된 좋은 느낌은 긍정의 평화로운 기운을 여전히 안겨준다.


*커버/하 사진 출처 : 고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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