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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Lee Apr 28. 2023

앙리 마티스의 꿈

모작을 하며



앙리 마티스의 꿈 모작



그림을 공부할 때 대체로 습작으로 모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모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정규 미술교육은 공교육으로 배운 게 전부라 모작을 꼭 해야 할 계기가 없었다. ​공부하고, 연습할 때 모작의 장점을 알고 있다. 대가의 그림을 뜯어보고, 그의 기법을 흉내 내며, 화가가 그림을 그린 과정을 따라간다. 그 붓질을 따르며, 화가의 의도에 공감해 본다. ​그럼에도 모작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시작도 안 했다. 고민하고 많이 망설이는 사람이라고 나를 설명하지만, 오랜 시간 재미와 충동에 쉽게 굴복하는 편이었다. 노오력 같은 것을 해봤던가? 기억이 안 난다.

이런 과정이 노력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노력이 노력인 줄도 모르고 하는 사람이고, 그 노력 과정에 쉽게 좌절하고 놓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이 노력이라면 내게 이 노력은 놀이에 가깝다. 그래서 가볍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즐겁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닿을 것인가를 떠올리면 막막하다. 나는 목표도, 이상도 없다. 무엇인가 하고 싶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무엇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건 남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책에서는 말한다. 작고 소소한 목표를 잡아.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잡아. 작은 성취감을 느껴보라고. 내 목표는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매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매일 책을 읽는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하는 것이 목표다. 쥐어짜내어도 그것만 떠오른다. 거창하지 않아서 나는 이렇게 매일 지구의 미물로 살아가는 것일까.


​작은 마음과 커지고 싶은 마음이 종종 부대끼는 지금을 살고 있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이라 이렇게 원하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의 지금을 그대로 느끼고 산다.



그림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일러스트 모임도 종종 나가는데, 이 모임은 회화에 가까운 모임이다. 아크릴화를 시작했다. 물감이야 넘치게 이미 갖고 있었고. 드디어 제대로 써보나?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올해는 모작을 하며 실력을 쌓고, 이후에는 내 그림을 그려가는 것이 함께 정한 목표다. 한 해를 결산하며, 전시회도 하기로 했다. 내가 세우지 못한 목표를 세웠다.


이고 지고 다니며, 불편하다. 어쩌면 그 공간에서 큰 그림은 그릴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재료를 사용하고, 해보지 않은 모작을 한다. 길을 걷다 오솔길에 들어선 기분이다. 어디로 가는 줄 모르지만, 재미있는 시간이다.​


첫 그림으로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선택했다. 마티스의 드로잉과 그림을 보며, 이후의 현대 미술이 여전히 그 선상에 있음에 감탄한다. ​김영하의 <샤워부스에서 노래하기>라는 에세이가 떠올랐다. 우디 앨런의 영화 <로마 위드 러브> 중, 샤워부스를 설치해 노래하는 오페라 가수에 대한 이야기다. ​


샤워실 가수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아마추어 예술가들에 대한 풍자로만 읽을 수 있을까? 프로페셔널 예술가들에게는 샤워실 가수의 면모가 과연 없을까? 왜 없겠는가. 한 작가에게 반복적으로 하나의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관찰될 때, 즉 한 작가가 어떤 특정한 서술 방식을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모티프 혹은 서술 방식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평생 물방울만 그리는 화가에게는 아마도 물방울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샤워를 하지 않아도 노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즉, 예술계의 현실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무대의 조건’을 자기에 맞게 바꾼다. 고전 오페라 무대에 샤워부스를 설치해 주인공이 샤워를 하면서 아리아를 부르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앤디 워홀이 그랬고 백남준이 그랬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그러나 아직 예술계가 용인하지 않던 것을 그대로 판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선 그게 ‘현대적’이라고 우겼고, 그렇게 오래 우기자 하나둘 믿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멀쩡한 동료들이 워낙에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믿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안 믿던 불신론자들도 그쪽으로 확 쏠렸고, 나중에는 무대에 샤워부스가 없으면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고…

<김영하, 샤워부스에서 노래하기, 다다다>


물론 피카소도 마티스도 당대에 이미 명성을 거머쥐었다. 그들의 샤워부스는 꽤 멋스러웠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샤워부스는 여전히 건재한다.


고흐와 호크니의 도록을 보던 중, 그들의 모작 그림을 봤다. 고흐는 웨젠 들라크루아의 선한 사마리아인을 그의 스타일로 모작했다. 그리고 호크니는 고흐의 의자를 그만의 방식으로 모작했다. 이는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내 스타일로 해석해, 원작의 구성을 재 배열하는 연습인 것 같다. ​


온전히 따라 그리려 해도 그곳에는 내 느낌이 숨어있었다. 색도, 선도, 형태도 마티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렇게 내 그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다.



그림 사이즈가 더 작아져서 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여인은 얼굴이 좀 더 작고 둥글어졌다.

붓질을 화면 위에 물감을 바르는 단순한 손놀림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붓질은 작가의 기분, 손동작의 속도와 리듬, 대상을 파악하는 단위와 크기 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요소이지요. 그래서 관람자는 붓질의 흔적을 보며 그 그림을 그린 작가의 숨결과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백남원, 채색의 기술 p164>


이 말을 떠올리며 그림을 살폈다. 한 번도 이렇게 천천히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럭저럭 한 장을 마무리했다. 이 새로운 시도가 설렌다. 늘 혼자 고군분투하지만, 점점 함께 그리는 이들이 늘어간다. 두근거리는 새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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