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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Lee Mar 08. 2023

두려움

두려움, 불안​


역경을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이룬 경험 같은 게 사라진 꽤 오랜 시간을 살고 있다. 어릴 적에도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나 하면. 그것도 치열하지도 않았다. 두려움이랄 것도 없었다. 때때로 눈치도 보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아빠가 무섭기도 하고, 엄마가 슬펐지만, 그냥 그냥 순탄하게 흘러간 하루들이었으니 그런대로 행복한 아이였구나. 첫 고난이랄 게 아마도 취준생 시절. 그리 길지 않았으니 그 역시 행복했군.

제일 힘든 시기는 회사 생활을 할 때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내내 괴로웠다. 지금 다시 그 일을 한다면 사랑할 수 있을까? 일을 대하는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것은 다시 일을 해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움은 아니다. 두려운 시기는 지금이다. 불안. 알 수 없는 길 속에 있는 지금이 두렵다. 내 인생 가장 긴 터널이랄까.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렇게 살고 있나?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기분이다. 무엇인가를 끝없이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을 자꾸 찾아 헤매는 것도, 그것을 해야만 잠시라도 내 코앞에 색채가 더해지는 것 같다. 더 행복해지려고? 그렇다면 나는 꽤 불행한 사람 같기만 한데. 말하기 어렵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커서를 위로 옮기고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지나고 나니, 과거의 하루들에 그럭저럭 행복한 아이였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지금 그때를 떠 올려서란 생각이 든다. 그리 길지 않았으니 그 역시 행복했다고 쓴 것은, 그리 길지 않게 끝났음을 아는 지금에야 할 수 있는 말. 그 시기의 지금의 나는 꽤 암담했으니까. 희망을 품었다, 좌절했다가 그랬다.​


내 앞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터널 같다. 온통 검은 터널이 아닌, 눈부시게 새하애서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선글라스라도 껴보면, 눈앞에 있는 책상도, 키보드도, 바로 곁의 꽃 한 송이도 보일 텐데. 모두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못 보는 것.

아무튼 내가 두려울 때, 지금의 두려움을 걸어가는 방식은 그냥 책 안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글자 속에 파묻히는 것이다. 시간을 글자로 빼곡히 채워버리는 것. 이따금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새하얀 시야가 또렷해진다.​

문득 떠오른 생각. 과거와 다른 점은 그때는 다음 골이 명확했다. 입시, 취업, 결혼, 승진, 출산.. 이런 식으로.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안 했다. 목표조차 모르겠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해, 나의 밤도 대낮처럼 환하다. 나는 새하얀 불안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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