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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Lee May 10. 2023

독립서점이야기 오래책방

슬세권 책방

수채용이라 할 수 없는 가벼운 일반적인 노트에 간단한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 300 gsm의 수채용지도 있지만, 더 휴대성이 좋고, 거기다 때마다 다르게 예쁜 노트를 들고 다니는 게 더 좋아졌다. 더웬트 그라파이틴 수채물감. 연필과 색연필을 사용했다.



오래책방

책방이 좋다. 책을 읽을수록 더 좋아진다.


나도 이런 곳의 지기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두려움 보다 큰 즐거움에 마음을 실은 사람들이 이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책방이 좋아서, 책이 좋아서, 글이 좋아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서, 책 읽기 좋은 음악을 틀고, 책 읽기 좋은 조명을 찾고, 책 읽기 좋은 책장과 책을 들이고, 또 책과 글을 더 살아있게 만들 것들을 떠올리고 꾸리는 게 아닐까.

요즘 소소한 재미는, 이런 곳에도 책방이 있을까 싶은 곳에 있는 책방을 찾아가는 것이다. 책방을 가기 위해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간 그곳에 있는 책방을 찾는다. 그 책방은 있을 자리에 있을 뿐인데, 여행자는 그 자리의 책방에 낯선 즐거움을 느낀다. 어딘가, 의외인 그곳에 책방이 있다. 기분 좋은 안도감이 든다. 점점이 있는 책방을 이어 여행을 해도 좋다. 책방을 찾아가는 길, 머무는 것이 모두 좋은 여행이라는 걸 알았다.

내 집 가까운 곳에도 책방이 생겼다. <오래책방>이다. 근처에 갈피책방도, 바다숲책방도, 카잔차키스 서점도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나의 반경에서 가까운 곳이라 반갑다. 이 정도면 슬세권이라고 할 수 있다. 걸어서도 갔고, 자전거로도 갔다.

더 자주 이곳에서 시간을 온전히 뭉개고 싶다. 그와 달리 또 마음이 바쁘다. 자주 찾아갈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가까우니까, 조금의 여유만으로도 이곳을 달려갈 틈을 낼 수 있다는 게 좋다.

이날도 갈까 말까 생각하다가, 꽤 시간이 흘러버렸다. 그러는 사이 주어진 시간이 1시간 30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 이러다 진짜 못 가겠다는 마음이 들어 나섰다. 일단 다녀오자!



감기를 심하게 앓은 뒤, 커피를 줄였다. 요즘은 카페에서 차를 자주 마신다. 파앤애플 민트티를 마셨다. 어떤 맛일까 상상했는데, 달콤하고 상큼하고, 시원하다.

오래 책방의 자리마다 책구절이 꽂혀있다. 그래서 앉은자리를 그 책 제목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날의 자리는 <오만과 편견>이었다.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오만과 편견> 자리에서는 벽의 거울로 나를 볼 수 있었다. 지금 보는 내 모습은 오만인가 허영인가. 실은 둘 다 가진 사람이다. 허영은 떨쳐내려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좀 더 내가 더 많이 남기를.

비치는 나를 그림으로 남겼다.

겨우 한 시간, 그냥 집에 있는 게 나을까 했는데, 오래 책방에서의 한 시간은 책을 읽고, 차도 마시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지기의 큐레이션을 즐기는 일이다. 오래책방에는 기독교 관련 종교서적이 많다. 그 외 다양한 책이 있고, 필요한 책은 주문할 수 있다. C.S. 루이스의 책이 꽂혀있었다. 궁금했던 책이라 집어 들었다. 옆에 있던 <나와 마주하는 시간>. 한동안 시집을 읽어보려 했는데, 역시 아직 버릇으로 만들지 못했다. 펼쳐서 몇 장을 읽으니 마음에 잘 와닿는다. 봄날의책의 세계시인선이라니 고민할 것이 없다. 이 출판사 책은 믿고 본다는 생각이 드는 곳들이 생겨났다. 봄날의책도 내게 그런 곳이다. 자기만의 색을 가진 출판사가 좋다.



다음에 다시 간 내 자리.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다.

“그렇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이.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잘 살고 있는 건가? 좋아하는 결 가까이에서 지내고는 있다.

​오래책방의 글쓰기 모임을 신청했다. 독서모임은 다른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오래책방은 어떤 향과 색을 가진 민들레꽃일까. 언젠가 그렸던 독립서점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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