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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mi Lee Feb 15. 2023

거기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에게 맞는 모임으로


모임이 많아서 좋다

같은 취향과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으려 외치면, 여기저기서 응답한다. 해시태그 검색, 오픈 채팅방 검색,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며, 단체 대화방에 입장한다.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서 좋다. 하지만 오해 말기를. 그 모임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고민하고 망설이는 시간이 길다. 그래도 찾아보면 있다는 걸 아니까. 그게 좋다. 목말라서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는 기분이랄까.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나가 본 활동이 어반스케쳐스 정모다. 현장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 어반스케치만큼 모여 그리기 좋은 장르가 또 있을까. SNS는 연결된 하나의 세계를 구현한다. 실시간으로 그린 그림을 알리고 소통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은 어반스케쳐스들에게 순풍을 달았다. 둘의 시너지가 좋다. 더 자주 풍경과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소식들이 눈에 띈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다 멋지다.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재미난 특징으로, 멀지 않은 지역에(상대적이지만) 점점이 어반스케쳐스 지부가 있다. 일구밀도가 남달라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교통도 좋고, 금세 이동할 수 있으니 부지런한 사람은 여기저기 참여하기 좋다. 지역별 어반스케쳐스 모임은 다양하게 연합할 수도 있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수원모임, 그리고 가까이 성남모임, 서울모임, 좀 더 영역을 넓히면 인천모임, 춘천모임, 고향에도 대구모임 등등 날짜도 다르고, 가려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여러 모임이 있다. 예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고 지고, 정모에 가보기도 했다. 그때 열정에 불이 붙었는데 타오르기 전 꺼져 버렸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게 힘들기도 했고, 이내 코로나가 터졌다.


그림은 대상을 더 자세히 보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잘 볼 수 있다. 특징은 무엇인지, 마음을 훔친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강조할 것인지, 나는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지. 생각하며 바라본다. 글도 그림을 그리듯 쓰라는데, 그림은 오죽할까. 어반스케치는 현장에서 관찰하고, 빛과 풍경, 사람을 담는다. 짧은 메모까지 남긴다면 더 좋다. 결국 오래 마음에 담고,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 있지도 않으면서, 스케치 모임을 극찬했다. 아무튼 이런 모임들이 있다는 것. 언제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늘 든든하다.


혼자 그리는 그림이 외로워질 때, 누군가와 내 그림을 나누고 싶을 때, 그림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로가 좋아짐을 느끼고 싶을 때, 어떤 모임에든 나가 보는 게 좋다. 당연히 모임에는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 더 친한 사람, 누군가를 만나고 어울리는 게 쉬운 사람이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쑥스럽고, 낯설다. 그래도 내 옆에서 척척 도구를 펼쳐 거침없이 그림 그리는 이의 열정을 만나면 나도 그 용기에 물든다. 괜찮다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기만 하라고 그림으로, 몸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더 호의적이다.



모닝어반스케쳐스 모임

어반스케쳐스 공식 챕터 말고도 여러 소모임이 있다. 언젠가부터 성실하고, 끈끈한 모임이 눈에 띄었다. 꾸준히, #목요모닝어스라는 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목요일 아침, 어반스케치 모임인가라고 추측했다. 그녀들의 활짝 웃는 모습과 그림이 자주 SNS와 어반스케쳐스 톡방에 올라왔다. 오후에는 일을 나가거나, 주말에는 시간이 안나는 분들. 그리고 아이가 어린 엄마들이 매주 목요일 아침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나 유령회원이라 눈팅을 하며 지냈는데,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다시, 나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도 정말 가게 된 건 한참 후인 5월이다. 결심도 시동도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5월 연휴였다. 수원 남수동 일대에서 그림을 그릴테니, 모여라! 친구들!

누군가 먼저 그림을 그리자 번개를 띄운다. 그럼 참석 가능한 인원이 그 메시지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로 적은 뒤, 채팅방에 붙여 넣기 한다. 리더인 그녀의 스쳐가는 메시지를 보고, “저도 가도 될까요?”

온다는 사람이야 늘 환영이라는 것을 안다. 나만의 착각 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원래 아침을 좋아하는 나는 기쁘게 차를 굴려 옛 수원의 성벽을 찾았다.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어딘가로 가는 기분이 특별하다. 화성행궁 정도가 내가 가본 전부다. 남수동의 오래된 집들, 초록, 파란, 빨강 대문. 늘어진 장미꽃 벽이 기억에 남는다. 컹컹 짖는 개소리도 들렸다. 어느 집 옥상에는 양봉통에 벌이 웅웅 거렸다. 연두색 잔디는 푸르고, 집들의 반대쪽에 낮은 화성 둘레길이 이어진다. 그 아래 이곳저곳 화판을 펴고, 서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처음 보는 언니들이 있다. 까만 강아지도 있다. 낯설고 따뜻한 풍경이다. 그림 같은 풍경으로 소풍을 온 기분이었다. 좋은 언니들, 환영하는 다정함이 흐른다.


“푹 자~ 자는 동안 다녀올게.” 이미 아이들이 일어나서 전화가 왔다. “엄마, 언제 와?”

금세 다녀올 테니 푹 자고, 아침 먹고 있으라고 말하고 나왔는데 마음이 바쁘다. 그래도 오늘 꼭 오고 싶었다. 바로 오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이후에도 그녀들은 매주 아침 스케치를 이어간다. 나는 그 한 번이 전부였다. 나 또 가도 되는 거겠지.

시간 맞으면 언제든 달려가야지. 그래. 그래야겠다. 이 글을 적으며 잊고 있던 마음이 올라온다.



연남동은 못 가도, 행궁동은 갈 수 있지.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이었나? 핫플레이스인걸 모르고 있었다. 생각하지 못한 이벤트로 나는 조금 더 넓어졌다. 언제든 좋지만, 봄의 행궁은 빛이 좋다. 네모의 아파트 단지에 살던 내게 생경한 풍경과 공기를 선사한다.

화성의 성곽과 그녀들을 담았다. 나는 풍경 속에 사람을 담는 게 좋다. 그날의 사람 냄새와 푸근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내 그림 속에 담긴 분들이 누구인지 다 알겠다. 그녀들의 현생도, 그림도 응원한다. 하긴 내 응원이 없어도 이미 빛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결국 나를 향한 응원이다. 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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