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프로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터 지금까지, 안 프로를 언제고 만나게 된다면 난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까-하고 종종 궁금했다. 안 프로를 떠올릴 때마다 그 인상이 매번 달라졌기 때문이다.
처음 안 프로와 통화를 나눌 땐 부모님께 사업을 차려준 (손님에게 각서에 사인하라고 강요하는 음침한 구석은 빼고) 건실한 청년이었고, 어제 아침 전부와 나눈 대화에 의하면 아기자기한 취미가 있는 공방 사장님이었고, 할머니들께 듣기론 싹수없고 드센 무당을 친구로 둔 싹싹하고 성격 좋은 여자였다. 적어도 사장님 연세가 대략 일흔 정도로 보이니 결혼도 출산도 모두 이른 나이에 했을 시대를 염두해 대충 계산해보자면 당연히 그의 딸은 중년이겠거니. 거기에 안 프로는 유부녀라고 전부가 그랬으니 딱이었다.
그러니 이런 이미지를 종합해 어림짐작했을 때는 절대로 저런 무시무시한 크기에 쨍한 빨간색의 지프차는 고사하고 가죽점퍼에 선글라스를 쓴 모습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나 젊을 줄이야. 누가 봐도 스물아홉 살인 나와 또래였고, 중년이 맞는데 엄청난 동안인 거라면 그것도 놀라울 지경이다. 그리고, 심지어 예쁘다. 왜 할머니들이 안 프로를 그렇게 후히 평가했는지 알겠다. 예쁨에도 종류가 있다면 안 프로는 신뢰가 있는 예쁨이지 않을까. 크고 날렵한 눈매는 꽤나 위압감을 주는데 반해 동글동글한 콧망울은 퍽 귀여워서, 호락호락한 인상은 아니지만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뜸 초면에 훅 들어온 반말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안 프로가 묻는다. 씻지도 않고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온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동시에 자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더니 귀에 꽂았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뺀다. 저거 때문에 온 세상 들으라며 고래고래 지르던 내 비명을 못 들었나보다.
말하려는데 목이 멘다. 크흠.
"저..."
"응. 말해봐."
"집 안에... 새가..."
"새? 뭔 새?"
"아니, 저기 펜션... 뭔 새인지는 모르고... 새가 들어와서..."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도 쥐어짜고 있는 내게 귀를 기울이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안 프로 때문인지, 맘대로 반말을 내버리는 안 프로에게 대한 저항감은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그녀에게 존재를 할지 반말을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말 끝을 흐리는 내가 이상하다.
안 프로가 날 살핀다.
"잘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줄 수 있어?"
눈빛이며 말투며 지나치게 다정하다. 왜 저래. 각서에 사인하라고 강요하던 그 악독한 펜션 사장은 어디 간 거야.
"객실에 새가 들어가서 내쫓으려 했는데 2층으로 가버려서...!"
"그래?"
있는 힘을 다해 목소리를 높여 말했더니, 다행히도 이번엔 안 프로에게 내 말이 전해졌다. 안 프로가 고개를 끄덕이곤 호스에 연결된 수도관으로 향한다. 밸브를 뚝딱 만지니 안 프로의 손에 들린 호스 주둥이에서 흘러나오던 물줄기가 멈췄다. 대충 아무 데나 호스를 던져버린다.
"있어봐."
벗었던 선글라스를 접어 자기 옷 목덜미에 꽂은 안 프로가 나를 지나쳐 척척 펜션으로 향한다. 그 뒷모습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안 프로의 가죽점퍼가 반짝인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새를 어떻게 내쫓으려는 건지 궁금해져 얼른 뒤쫓아간다. 안 프로가 지나간 자리에 상쾌한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 펜션 세탁기에 구비된 섬유유연제 향과 같았다.
"어이구, 박희례!"
"어? 네?"
경황이 없어 열어놓은 문 앞에 선 안 프로가 대뜸 나를 버럭 불렀다.
"주의사항 4번, 창문 및 출입문 개방 금지! 그새 잊은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안 프로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는 그녀의 지적에 불현듯 서러움이 화르륵 타올라 쏘아붙이게 됐다.
"아니! 문 열린 틈에 무단침입한 새가 잘못이지, 왜 나한테 난리야? 그리고 창문도 안 열리는 이놈의 집구석에서 새가 나갈 구멍은 만들어줘야 할 거 아니야! 그래, 안 그래!"
"그럼 새가 알아서 나갈 때까지 기다리던가. 왜 손수 쫓아내려고 몰다가 2층으로 올라가버렸대?"
"내가 쫓아내려고 몰았는지 새가 저 혼자 펜션 투어를 도느라 2층으로 갔는지, 그걸 그쪽이 어떻게 알아?"
"방금 네가 했던 말이잖아. 객실에 새가 들어와서 내쫓으려고 했었다며?"
아,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잠시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고 있는데, 그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은 안 프로가 홀연히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참나. 아무리 내가 그런 말을 했기로써니, 그래서 내가 틀린 말했어? 창문도 안 열리는 이놈의 집구석. 알아서 둔다고 새가 어떻게 나가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나가는데?
본인은 얼마나 잘 새를 유도해서 내쫓을 수 있는데? 그래봤자 내가 했던 것처럼 사지를 휘적거리며 겁을 주는 거 말고 본인은 뭘 할 수 있는데?
의심을 가득 안고 차마 펜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선 내 눈앞에 안 프로가 돌아왔다. 그것도 두 손에 새를 소중하게 담아 들고서.
"그걸 잡았어? 어떻게?"
"침대 위에 앉아있던데? 나가려고 창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나봐."
"뭐? 어떡해? 죽은 거 아니야?"
"죽진 않았고, 뇌진탕인 것 같아. 가벼운 거면 좀 이따 다시 잘 날아갈 거야."
안쓰러워라. 사람이 자기 몸을 잡고 있는데 저항도 못하고 있는 새를 바라보자니, 날지 못하도록 세게 쥐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얌전히 손 안 가득 온기를 만끽하고 있다. 고개를 까딱까딱-
"네가 들어볼래?"
안 프로가 내게 새를 내민다.
"너무 빤히 보길래. 만져보고 싶어?"
"어? 뭐..."
만져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지만 그렇다고 진짜 만져볼 용기는 나지 않아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안 프로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내 손을 끌어올리더니 내 검지 위에 새를 살포시 세웠다.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모든 일이 이뤄졌기에 행여라도 내 잠깐의 행동에 부상당한 새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쉬겠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새는 내 검지 위에서 제 몸을 또 단장하기 시작했고, 눈알만 굴려 보니 안 프로가 메모보드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차. 내가 저기에 뭘 격하게 써놨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안 프로가 세상 호탕하게 깔깔 웃기 시작했다. 내 신경은 온통 새가 놀라 자빠지지 않을까 그것만 걱정하고 있는데 새나 안 프로나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박희례! 너 뭘 했길래 이런 게 쓰여있어?"
"이 새가 천장에 똥을 싸놨으니까 닦아달라고 쓴 거지!"
"아니, 이거 말이야."
메모보드를 툭툭 치며 말한 안 프로는 새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날 보더니 친히 메모보드를 떼어 내게 직접 보여줬다.
< 새똥이나 치워주시지? 실패!!! >
이상하다. 방금 내가 쓴 글에 또 가로선이 직직 그어져있고, 또 '실패'가 적혀있다. 분명 내 것과 다른 글씨체. 진즉에 적혀있던 그 글씨체다. 내가 새에 대해 알리려고 컨테이너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지금까지 여길 드나든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설마 안 프로가 쓴 건가? 모른 척 그렇게 몰아가고 싶어도 말이 안 되는 상상인 걸 안다. 저렇게 눈꼬리에 눈물을 달면서까지 깔깔 웃어대는 저 모습이 감쪽같은 연기일 리가 없다.
"뭘 실패했길래 이런 게 써있어?"
"산책하기...가 적혀있긴 했었는데..."
"산책하기?"
"아주 오래 산책하기...?"
"그걸 실패할 수가 있어?"
"내가 어떻게 알아! 누가 이런 건데?"
"글쎄?"
차라리 전부라고 얘기해주지. 아니, 차라리 자기가 그랬다고 하지. 모르는 척 연기하면서 날 골려주는 거라고. 그럼 나야말로 모르는 척 넘어가줄 텐데.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메모보드를 다시 잘 벽에 거는 안 프로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당신이 그랬어?"
"나겠냐?"
"그럼? 실장님이야? 아니면 사장님이야?"
"우리가 손님 있는 객실에 아무 때나 드나드는 사람들로 보여? 그렇게 생각한다면 좀 실망인데, 박희례."
"그럼 대체 누구냐고! 왜 여기는 자꾸 없던 물건이 생기고 누가 쓴 건지도 글이 써져있는 건데!"
본의 아니게 쌓였나본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좀 질렀더니 새가 내 손가락을 쿡쿡 찌른다. 아야. 아팠다.
"그럼 박희례는 누가 쓴 건지도 모를 글에 왜 답해주고 있어?"
안 프로가 묻는다.
"내가 보기엔 그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랑 재밌게 놀고 있는 것 같은데. 티키타카라고나 할까?"
"누가?"
"네가."
"내가?"
"응."
"아니야!"
"아니야?"
"그래!"
"그럼 이 메모보드 떼어갈까?"
그 순간, 새가 날았다. 나도, 안 프로도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새가 하늘의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나도, 안 프로도, 누구 하나 먼저 고개를 움직이지도,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귀여워서 어느덧 마음에 둬버린 새가 미련도 없이 떠난 상실감 때문인지, 메모보드를 떼어가겠다는 말에 느낀 괜한 쓸쓸함 때문인지.
"잘 나네. 걱정할 필요 없겠어."
"그래도 다쳤는데, 저렇게 바로 날아도 되나?"
"새는 자기가 언제 헤매지 않고 완벽히 날 수 있는지를 잘 알아.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도 그렇지. 가벼운 뇌진탕이었다고, 지금은 잘 날아갔다고 해도 저렇게 날다가 머리가 어지러워 힘을 잃고 떨어질 수도 있지 않나. 괜히 내가 펜션 밖으로 내보낸다고 한 별 짓이 트라우마로 남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안 프로의 말대로 알아서 나갈 때까지 기다려줄 걸 그랬나. 막상 보고 만져보니 사납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귀엽기만 한 새였는데.
"그래서."
"......"
"떼어가, 말아? 메모보드."
떼어가지 말란 말이 목구멍에 박혔다. 그거라도 없으면 심심할 것 같단 말이 입술 밖을 나오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며 죄 없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본다. 맑고 화창하기만 한 하늘에 눈을 두면서도 하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안 프로가 내 대답을 기다리며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알만 굴려 안 프로를 쳐다봤더니,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분명 안 프로는 내가 왜 아무 말도 못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천장에 새똥이나 치워줘."
자꾸 내 말문이 막히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해 미쳐버릴 것 같다. 그래서 말했더니 메모보드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깔깔대며 웃는 안 프로의 모습은 내가 감당해야겠다.
웃음을 진정한 안 프로가 알겠다면서 자리를 옮겼다. 근데 왜 펜션 밖으로 나오다 못해 컨테이너 쪽으로 향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불러 세웠다.
"어디 가?"
안 프로가 멈춰 뒤를 돌아 나를 본다. 또 씨익- 웃는다. 가만 보니 이 집 사람들, 왜 이렇게 잘 웃는지 모르겠다.
"또 잊었네, 박희례?"
"또 뭘?"
"주의사항 4번!"
잔소리를 들으면 반발심이 생기는 유치한 성정 때문에 지그시 안 프로를 노려봤지만, 안 프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뒤돌아 제 갈 길을 가버린다.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에 안 프로를 뒤따라가보려 했지만, 그전에 두 눈을 꾹 감고 펜션의 하얀 문을 닫았다. 뭐 하나 시원하게 기분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이거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 닫힌 문이어도 꾹꾹- 행여나 바람결에라도 열리지 않을까 확인하며 꾹꾹-. 그리고 나서야 조금은 가벼워진 걸음으로 얼른 안 프로를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