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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Jun 11. 2019

가지 마

Written by. IN-AE


     내 그 자존심이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다리를 건널 때, 다리 아래를 내려봤다. 다리 밑에서 흐르는 강물은 너를 향하고, 너를 따르고 있었다. 가만히 강물을 바라내려봤다. 그러고 있으면 너를 향해 따라 흘러갈 줄만 알고.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널 잡을 수 없단 걸 알면서.

     비도 오지 않는데, 수면 위로 똑똑 물방울 여럿이 떨어졌다.

     비도 오지 않는데, 얼굴이 차곡차곡 젖기 시작했다.

     차라리 비가 왔으면 했는데, 예정도 없던 비가 내릴 리가 없었다. 해가 쨍쨍하고, 바람은 선선해서, 날씨가 너무 좋아 사람들이 하나둘 산책을 나섰다. 나는 그 가운데서 혼자 비도 오지 않으면서 우중충했다.     


     다리를 향해 걸을 땐,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등 뒤 허공에 너의 손이 나를 향해 허우적거렸으면 좋겠다.

     뒷머리가 따가운 건 돌아서지 않는 나를 네가 뚫어져라 쳐다보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내 등이, 뒷머리가, 내 어느 부위에도 어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건 네가 내게 어서 닿기에 내 걸음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눈치 없던 걸음을 늦췄다. 일부러 팔을 더 크게 허우적거리며 걸었다. 이대로 뒤를 돌아 너와 눈이 마주치면 지어 보일 미소를 미리 연습했다.

     하나, 둘, 셋.

     뒤를 돌았다. 너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둘러 다리를 향해 걸었다.     


     네게서 막 돌아섰을 땐, 당연히 네가 날 잡을 줄 알았다.

     울지도 않는 나를, 매달리지도 않는 나를, 화를 내지도, 섭섭한 티를 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는 나를.

     “잘 가.”

     오랜 이야기 끝에 단 하나의 말을 건넨 나를, 너는 잡을 줄 알았다. 너무도 태연한 나를 너는 너무도 아프게 쳐다봤기에.

     돌아선 나를 네가 잡아주길 바랐다. 사실은 잡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었고, 애원하면서 울고 싶었고, 울면서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러지 않았던 건, 네가 대신 그래 주길 바라서였다.

     네가 그러지 않았던 건, 내가 그래 주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너는 굳게 마음을 먹은 듯 굳게 입술을 물었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간다고 말하겠지.

     “가야 해.”

     진짜 가야 한다고 말하겠지.

     “이젠 정말 가야 해.”

     손바닥 가운데가 아려 불에 타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주먹을 꼭 쥐었다. 고개를 떨구다 내 주먹을 본 너는 다시 고개를 들어 말했다.

     “가지 말까?”

     가지 말란다고 안 갈 거였으면 왜 가야 한다고 말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로, 제발 붙잡아달라는 얼굴로 한껏 각을 잡고 가야 한다고 말해놓고 너는 이제 와서 왜 나를 떠보냐고 화를 낼 걸 그랬다.

     그마저도 자존심이 상했다. 손가락이 터져라 쥔 주먹을 보고 네 눈에 어린 기대가, 간다는 네 말에 조금 화가 난 나를 확인한 너의 기쁨이 기분 나빴다. 그래서 말했다.

     “잘 가.”

     그리고 뒤를 돌았다.     


     “가지 마.”

     내 그 자존심 때문에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너를 잃었다.

     이제와 말한다고 달라질 일이 없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 사라져가는 너의 점을 향해 말했다. 너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어쩌면 내가 너로부터 떠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너의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인데, 그런 네가 나를 떠난다고, 섭섭하다고 따라나서지 않는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아니. 잡지 않은 내 잘못이다. 따라나서지 않은 내 잘못이다.

     아니.

     “가지 마.”

     이 한 마디 못한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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