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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May 24. 2019

악몽

Written by. IN-AE

"어딨어?"


눈을 뜬 그는 사무치는 외로움에 참을 수 없었다.


옆에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가 없다. 방에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가 없다. 거실에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가 없다. 다른 방에도,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이 집 안 어딘가에는 꼭 있으리라 기대했던 그가 어디에도 없었다.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보자 여전히 기나긴 밤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엎드려 억지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그 숨은 답답하고, 맵고, 찝찝했다.


그래서 그는 숨을 쉬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고, 어디서도 그가 들을 수 있도록 아주 큰 소리로,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소리로 그를 찾았다. 곧,


그는 지쳤다.


기침이 났다. 침과 함께 아주 조금 피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피가 더 나라고 더 크게, 더 세게 기침을 했다. 어디서도 그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도저히 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처럼.


기침이 멎고, 그가 쓰러졌다. 양 눈에 고인 눈물 한 방울이 마침내 흘러내렸다. 다음 순간 눈물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아이처럼 온몸을 말아 안았다.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 그가 사무치게 그리워 울었고, 말도 없이 사라진 그가 미어지도록 미워 울었다. 그런 그를 찾는 스스로가 불쌍해서 마저 울었다.


이제 그는 그가 어디 있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의 슬픔에 취했다. 목이 아팠고, 가슴이 아팠다. 그 느낌에는 묘한 중독이 있어 그는 쉽사리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이토록 처연한 자기 자신을 동정할수록 알 수 없는 희열이 느껴졌다.


차츰 눈물이 그쳤을 때, 그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니 창가로부터 스민 새벽살이 드리웠다. 진한 군청빛이 천장에 밤을 밀어 넣었다. 새벽이 오도록, 그 긴 시간을 홀로 지새웠다.


새벽이 비춘 그의 눈은 보랏빛으로 달아오르고, 한껏 살이 부어올랐다. 우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리도 맹목적으로 비명을 질렀는지 이제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맞아.


흠집투성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를 찾았다. 그는 그제야 걱정을 시작했다.


아침이 되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아. 그가 이대로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지금 누구와 있는 거지? 홀로 있다면 이 시간에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새벽에 위험하게 왜 혼자 있는 거지? 혼자가 아니라면 날 두고 누구를 만나러 간 거지?


간단한 쪽지 하나 없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나 없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야?


사지가 떨렸다. 손끝이 저리고, 발끝이 저리다. 허리에서부터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숨결이 희미해지고 동그란 눈동자가 뒤집히기 일보직전이었다.


"어디 있어요?"


마지막 힘을 다 해 허공에 소리를 던졌다.


문이 열리고, 그가 돌아왔다.




"어딨어?"


그는 어디도 아닌 바로 문 밖에 서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기나긴 밤을 지나 새벽이 드리울 동안, 그는 어느 곳도 아닌 문 밖에서, 현관문에 등을 기대 문 안의 그를 듣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그의 표정도 바뀌어 갔다.


그가 그를 찾아 부르짖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꼭 감았다. 센서등이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미동 없이 서서는 그가 그의 이름을 외칠 때 저도 따라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어두운 복도에 자그마한 메아리와 그의 숨결만이 차르랑거렸다.


그가 거센 기침을 뱉을 때, 그마저도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번쩍 떠 뒤돌았다. 센서등이 켜지고, 그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철컥 소리가 들렸으나 그의 기침소리가 더 컸다. 아프게 신음하며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그를 들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더 아픈 듯 가슴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기침을 꼭꼭 삼켰다.


오랜 시간 끝에 겨우 그의 기침이 잦아들고, 다음 순간 집안에서부터 희미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그는 스르르 쓰러져 맨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정신이 없음에도 문에 바짝 붙인 귀를 떼진 않았다. 단 한순간도 그의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다분히 충동적인 일탈이었다. 잠에서 문득 깨서는 행여나 그가 깰까 조심스레 일어났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집을 나섰다. 자신의 인기척에 일어난 그가 '어디 가?' 물어보면 어쩌나.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음에도 그는 비행을 감행했다. 그 자신도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고 신비로웠다.


그래.


그를 떠올렸다. 그 잠이 든 고요한 꿈결. 잠이 들었을 때만 볼 수 있는 그의 어린 얼굴, 나만 볼 수 있는 그 얼굴. 그는 무엇을 원했기에 꿈을 기획했을까. 어떤 영상으로 어떻게 편집해 어떻게 스스로에게 보여주는 걸까. 그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무슨 꿈을 꿀까?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무의식의 세상이 아득해지는 과정이 얼마나 한스러울까?


그 앞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앞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는 왜 일어났을까. 갑작스런 옆자리의 한기를 느꼈을 수도 있다. 무서운 악몽을 꿨던 것일 수도 있다. 잠이 많은 그가 잠이 든 지 고작 몇 시간 만에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 부자연을 자신이 만들었기도 했지만.


"어디 있어요?"


그때 문 안쪽으로부터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덜미에 소름이 끼쳐올랐다. 그는 당장에 일어나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문이 열리고, 그가 한달음에 달려와 그의 앞에 섰다. 그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퉁퉁 부은 눈덩이를 힘겹게 접어 웃었다.


"여기 있다."

"응.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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