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IN-AE
떨어지는 순간 수면에 닿은 등이 아팠다. 높은 높이에서 떨어져 그런지 정말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온몸을 뒤덮은 물은 서서히 나를 잠식한다.
처음엔 그럭저럭 숨을 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점점 심연의 압력이 나를 위협하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산소를 찾아보지만 콧속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코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입으로 내보낼 수 있는 숨을 최대한 절약해가며 내보냈다. 아까보단 조금 나아졌다.
인간이 물 속에서 산소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긴 하다. 전문 다이버도 아닌 주제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무슨 자신감으로 물 속으로 뛰어들었느냐, 내게 그것을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왜 그랬느냐, ‘그냥’이라 답할 수도 없다.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도. 물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 자체가 내겐 운명이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이대로 물 속에서 죽는다 해도 할 말은 없다.
관심 받고 싶었나? 그런가. 난 그저 네가 보고 싶었다.
이런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나? 그런 게 따로 있나.
너만 볼 수 있다면야.
눈을 떴다. 물 속에서 뜬 눈이 아이러니하게도 건조한 눈만큼이나 뻑뻑하다. 새파란 하늘은 물 속에서 하얗게 보일 뿐이다. 새파란 가운데 얽히고설킨 솜과 실 같던 하얀 구름들이 아름답기만 했는데, 물 속에서 올려보니 아무 것도 아니다. 보잘 것 없고, 매력도 없는 그저 하얀 수면일 뿐이다.
점점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는 몸은 조금씩 그나마 가지고 있던 산소를 잃어갔다. 하얬던 수면은 점점 파랗게 변했다. 심해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은 이미 떨쳐버렸다. 솔직히 심해까지 가기도 전에 죽을 지도 모른다.
앞으로 세 숨을 흘려보내면 나는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앞으로 두 숨을 흘려보내면 나는 살려 달라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앞으로 한 숨을 흘려보내면 나는 아무도 모르게 검은 바다에 잡아먹힐 것이다.
체념 끝에 숨을 아끼려 하지 않았더니 생각보다 빨리 숨을 쉴 수 없게 됐다. 몸에 난 구멍이란 구멍으로 물이 들어간다. 사지가 허우적거린다. 산소를 상실한 내게 고통밖에 남지 않았다. 눈알이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 내 동그란 눈알을 보게 될까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살려줘, 입을 벌려 있는 힘껏 요청한 구조는 물 속으로 스며들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입 속으로 필요 이상의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저항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짓누르는 중력에도, 중력과 싸우는 부력에도.
날 이렇게 몰아세운 네게도, 네 핑계를 대며 날 이렇게 만든 내게도.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물고기가 유연한 몸짓으로 헤엄친다. 마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몸을 빙- 돌아 반대쪽 뺨을 스친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몸에 힘이 풀린다.
이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눈 앞에서 빛이 흩어진다. 수평으로 누운 내게 물은 침대일 뿐이다.
새파란 이불이 덮이고, 새까만 요가 깔린다.
이불의 색이 짙어질수록 마음이 편해졌다.
이곳에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도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도 없고, 그런 나를 살게 하는 공기도 없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나만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 공간이 너무 편안했다.
나를 애써 잡으려는 수면 너머의 빛을 향해 안녕을 고했다. 그 너머에 있을 네가 찰나에 떠올랐다.
아,
네가
보고 싶다.
.
.
추락하는 등에 어떤 것이 닿았다. 그 어떤 것이 나를 유혹하던 중력을 사로잡았다. 더 이상 몸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 어떤 것이 이제 나의 등을 밀어 올리기 시작한다.
위로.
위로.
올라간다.
어두웠던 시야가 점점 밝아진다. 나의 이불이 하얗게 바래고, 내 몸 너머로 흘러내려 더 이상 나를 덮어주지 못했다. 물살이 올라가려는 나를 막으려 하지만 등을 받친 무언가는 절대 나를 놓지 않았다.
내 몸이 파도를 일으키며 바다를 가르렀다.
내 몸을 지탱하는 무언가는 바다를 열어 기어이 나를 꺼내었다.
수면을 뚫고 내가 다시 나왔다. 곧이어 물이 첨벙이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에 온몸이 싸늘해진다. 살갗에 느껴지는 공기가 그새 낯설다. 몸이 땅에 내려진다. 소름이 끼친다.
살았다.
살아있다.
입술에 어떤 것이 닿았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어떤 것의 숨이 들어온다. 목구멍을 타고 온몸을 퍼진다. 그렇게 두 번. 곧이어 가슴에 어떤 것이 닿는다. 그리고는 갈비뼈가 부서져라 압박을 가한다. 아프다.
내 것이 아닌 숨 때문에 구역질이 난다. 받아들이기 힘든 생명이 내 안의 죽음을 끄집어냈다. 결국 나의 호흡을 눌러댔던 바닷물을 토해내 밀린 숨을 몰아쉬었다. 산뜻한 공기 냄새가 그제야 났다. 내가 살아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눈이 너무 부셔 곧장 눈을 뜨진 못했지만 나를 살린 그 어떤 것이 내게 하는 소리들은 똑똑히 들린다. 그 야속한 것의 소리가 들린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야속한 것은 이제 내 몸을 받쳐 일으키고 내 뺨을 어루만진다. 햇빛에 익숙해져 뜬 실눈 틈에 어떤 이의 손이 보였다.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어떤 이의 목소리가 더욱이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고막에 찬 물들이 슬슬 빠지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 찝찝한 물을 털어버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소리를 질러 내 목소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조금씩 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으로 돌아왔다. 몹시도 미웠던 세상에 다시 앉았다.
정신이 번쩍 들어 두 눈을 떴다. 나를 되찾은 너는 울고 있었다. 발작을 하듯 꿈틀대던 내가 일순간 죽은 듯이 모든 행동을 멈추자 너는 많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새 내가 죽은 줄 알았는지 더 거세게 울부짖으며 내 뺨을 세게 쳐댔다.
“안 돼. 아직은 안 돼, 제발. 제발 부탁이야. 정신 차려.”
얼얼한 볼살을 가르는 통증이 견딜 수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아파.”
결국 나는 너를 보았다. 제대로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너는 다급하게 나를 안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이름을 부르며 너는 내게 사과한다.
네가 나를 찾았다.
나를 살렸다.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라 말하며 나를 붙잡는다.
그런데, 왜?
나는 정말 궁금했어.
네가 날 사랑할까?
네가, 나를 사랑할까?
내가, 널 사랑해도 될까?
나는 다만 너의 등에 손을 올려 보았다. 내가 믿고 나를 의지했던 너의 등이 추위 때문인지 떨고 있었다. 요동치는 심장박동 소리가 느껴진다. 나는 다만 그런 너의 등을 쓰다듬었다.
“사랑해.”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