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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Jul 02. 2019

아지랑이

Written by. IN-AE

나는 지금 여기에…


어떤 이는 여름 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세상엔 이 밖에 없었다.


이는 발바닥이 타들어 걷는 자국자국마다 살점을 하나씩 두어 걸었다. 갈증난 두 입술이 습기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의 갈증은 해소되지 못했다. 이건 고문이 분명했다. 온구멍에서 피가 주룩주룩 내려도, 너덜너덜한 피부가 옅은 여름바람에 스쳐 벗겨져도, 관절이 뒤틀리고, 숨이 차오르다 못해 허파가 터져도.


어떤 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식도를 뜯어내고 싶은 갈증과 눈꺼풀을 찢어버리고 싶은 수면욕이 이를 걷게 했다. 앞선 욕구들을 이기지 못하면 삶마저 이기지 못할 것이었다. 이제 아스팔트는 앗아갈 발바닥 살점이 없어 혈관을 뜯어버렸다. 아스팔트의 오돌토돌한 틈새마다 어떤 이의 피가 흘렀다.


문득.


어떤 이가 가던 길을 멈췄다. 척추가 부러질 듯한 기세로 이가 힘껏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시선이 피어오르는 핏꽃에 꽂혔다. 물이다. 이는 혼란스런 정신을 완전히 놓았다. 오아시스야.


힘겹게 몸뚱이를 가누던 다리 관절이 꺾였다. 엎드려 해를 향해 무릎을 꿇더니 허겁지겁 바닥에 흐른 피를 핥아버렸다. 그러나,


혀로는 원하는 만큼의 수분이 충족되지 않았다. 입술을 모아 수분을 빨아들였다. 피는 금시에 증발했고 그나마 아스팔트에 말라붙은 피를 취하려다 이는 입술을 뜯기고 혀를 잃었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무엇이라도 갈증을 해소해줄 만 한 수분을 찾아 기어 다녔다.


충돌.


어떤 것과 부딪혀 어떤 이는 저 멀리 날아가 패대기 당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사고를 당한 이를 놀란 눈으로 보거나 서둘러 신고를 하거나 이를 걱정하며 다가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걷느라 바닥에 쳐진 어떤 이를 보지 않고 지나치기 바빴다.


어떤 이는 제 눈 앞에 부러진 이 세 개가 포착된 것을 지켜보며 아스팔트에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는 무슨,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몇 겹이나 아스팔트를 덧칠하더니 기어코… 기어코 생명을 죽이고 희망을 덮어 기회를 막고 말았다. 그런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고 죽었다.


어떤 이는 이제 체념한 듯 똑바로 누워 머리 위로 뜬 찬란한 햇살을 받아들였다. 이의 살점이 녹아 흘러 아스팔트를 덮었다. 그러자 누군가 어떤 이의 머리를 지르밟았다. 부서진 두개골로부터 이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여름 해는 이를 비웃듯 아스팔트를 흥건히 적신 이의 피를 빠른 속도로 말리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를 넘어 이의 몸 위로 하얀 김이 떠올랐다. 수증기가 수증기를 하늘 높이 밀더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어떤 이는 서서히 사라졌다.


머지않아 빨간 구두 하나가 뾰족한 굽을 이의 심장에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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