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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Jul 05. 2019

뒷모습 : 낮

Written by. IN-AE

당신을 모른다. 모르는 당신과 눈이 맞고, 그런 당신과의 미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당신에게 고백했다.


“좋아해요.”


당신의 마음도 모른 채 내 마음을 먼저 던졌을 때, 당신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 내가 차오르고 당신의 입술이 열려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까지의 짧은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생각이 많았던 순간이었다.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낸 순간이었고, 어쩌면 당신이 내 마음을 거절한다면 그땐 내 인생에서 가장 창피할 순간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대답도 듣지 않고 도망이나 가버릴까?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은 싫은 표정도, 좋은 표정도 짓지 않았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을 가만히, 뚫어지겐 아니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도록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당신을 바라보는 내 눈 너머에 무언가를 찾는 눈빛이었다. 내 진심을 경계하고, 내 고백을 믿지 않는 눈빛.


당신의 눈빛을 그렇게 이해했기에 난 당신의 입술이 열리는 그 순간까지 낙담해버렸다. 당신이 날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떠나서, 당신과 나는 여전히 가깝지 않은 사이였단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당신을 모르는 만큼 알고 싶어 고백했지만, 당신은 날 모르는 만큼 날 알고 싶어 하진 않구나 싶었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열리는 당신의 입술을 바라본 채 체념했다.


“좋아해. 나도.”


그리고 지금, 당신과의 첫 데이트를 위해, 당신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 몇 벌 째 바꿔 입었는지 셈을 포기한, 내가 가진 중 가장 자신 있는 옷을 입었으면서도 자신이 없어 지나는 모든 건물마다 멈춰 비춘 내 옷매무새를 다듬고, 평소에는 신경도 안 썼던 잡티 하나에 부끄러워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러다 문득 당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좋아해. 좋아해. 분명 날 향한 당신의 고백. 내가 먼저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경계심이 많은 당신은 아마 끝까지 하지 않았을 당신의 고백. 내 성격이 당신보다 낯을 덜 가리지 않았더라면 당신과 나는 아마 적당한 호감과 적당한 그리움으로 서로를 적당한 선에서만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나보다도 낯을 덜 가리는 누군가가 먼저 당신에게 고백을 했더라면 당신은 어땠을까? 똑같이 내면을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당신은 무슨 말을 건넸을까? 당신이 지금보다 경계심이 많지 않았더라면 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은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 나를 좋아했을까?


그때, 저 멀리, 내가 걸어야 할 도로에 걷고 있는 당신을 봤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훔쳐봤었던 손톱만 한 당신이 그보다도 점만 하다고 못 알아볼 리가 없다. 뒷모습만 봐도, 시야의 구석에 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당신이 저기, 저 멀리 있다. 그것도, 감격스럽게도, 당신의 걸음에 끝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있다.


서둘러 달려가서는 가까워지며 내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히, 그렇게 당신의 뒤에 조금의 거리를 두고 붙어 따라 걸었다. 당신은 누가 자기 뒤에 섰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 건지, 그저 자기 앞을 바라걸을 뿐이었다.


당신의 뒷모습을 찬찬히 구경했다. 이제껏 본 적 없이 한껏 빼입은 당신의 옷차림에서 당신의 아침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수없이 많은 옷들 중 가장 자신 있는 옷을 골라 입으며 나와의 데이트를 기대했을 것이었다.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두지 않는 머리카락 속에서도 첫 데이트의 설레는 마음을, 나와 같은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잠시 놀라 움츠렸더니, 당신은 그저 도로 옆에 따른 시냇물을 구경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생각보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에 가사가 제법 또렷하게 들려왔다.


“너의 몸짓에 맞춰 춤을 추는 나, 내 바닷속을 헤엄치는 너. 오늘을 기다렸어, 이 순간, 내겐 오직 지금 뿐이야” (정영은 ‘품’)


웃음이 나 숨을 죽였다. 나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이런 노래를 떠올렸다는 게 괜스레 기뻤다. 당신과 나는 아직 첫 데이트를 하기도 전인데, 아무리 가사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것이더라도, 깊은 밤에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다니. 당신의 신청곡에 사연이 궁금해졌다.


역시나, 내가 모르는 당신에게 닿고 싶다.


- 어디예요?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곧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당신의 노래는 멈췄지만 웃음소리가 이었다.


- 가는 중. 넌 어디야?

- 나도 열심히 가는 중이에요.


당신이 크으게 기지개를 켰다. 으이짜-. 당신이 기지개를 켤 때 내는 소리가 새삼스러웠다.


- 보고 싶어요.


당신의 뒷모습을 돌려 눈을 맞추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아 보낸 말이었다. 그 말이 당신에게 닿자마자 당신은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그 움직임에 놀란 나도 급히 서버렸다. 혹시나 당신이 날 눈치챌까 숨도 쉬지 않았다.


아주 조금 당신의 답이 지체됐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싶어 부끄러웠다. 아니, 당신을 부끄럽게 했나 싶어 부끄러워졌다. 당신 성격에, 당신처럼 조심스러운 성격에 이런 성급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당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나는 매번 이렇게 부끄러워야 할까? 언제쯤 당신을 다 알아맞힐 수 있을까?


수습할 말을 떠올리느라 동공이 바쁘게 움직일 때, 당신에게 답이 왔다.


- 돌아봐도 돼?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여전히 뒤를 돌아있었다. 당신은 그 상태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 메시지도 전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당신은 슬금슬금 고개를 돌리고, 내 눈치를 보며 뒤로 돌아섰다.


마침내 당신이 나와 마주 섰을 때, 놀라서 어벙하니 벙쩌있는 나를 본 당신은 웃었다. 좋아해. 그때 그 고백을 했을 때, 그 고백을 이어 웃었을 때처럼 세상 빛을 모두 머금듯 환하게 웃었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우리의 첫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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