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내 INAE Jul 12. 2019

뒷모습 : 밤

Written by. IN-AE

“가. 가는 거 보고 갈게.”

“아냐, 먼저 가요. 가는 거 보고 갈게요.”

“이러다 밤 새겠어. 얼른 가라니까.”

“그러게 그냥 집에 데려다 준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데려다 준다고 했잖아.”

“그럼 내가 마음 편히 어떻게 집에 가요?”

“그럼 나는 마음 편히 어떻게 집에 가?”


똑같은 얘기를 몇 번째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헤어지기 싫은 사람이기에 그렇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장소에서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오직 당신과 함께 했기에 끝내고 싶지 않은 특별한 하루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헤어짐을 미루고 의미 없이 달콤한 배웅을 주고받으면 당신과 평생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당신은, 몰라도 되는 찌질한 내 모습까지 모두 알아채고 마는 당신은 먼저 손을 놓지 않으면 내가 당신의 손을 끝까지 놓지 못할 것까지 알아버리고 스르르 내 손가락에서 빠져나갔다. 더없이 아쉬웠지만 썩 괜찮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렇게 놓쳐버린 당신을 하염없이 보고 싶어만 해야 했지만, 이제 나는 당신이 보고 싶을 땐 마음껏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허공을 향해, 언젠간 당신에게 내 그리움이 닿기를 가만히 앉아서 간절히 바랐던 외로운 날들은 지났다.


“벌써 보고 싶은데 어떡해요?”

“괜찮아. 내일 보면 되지.”


마음에 든다. 당신의 내일에도 내가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뻐서, 행복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당신은 그런 내가 참 마음에 들었는지 나와 똑같은 근육을 쓰며 웃었다. 당신과 나는 끝까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돌아서도 웃고, 다시 뒤돌아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웃었다. 단지 서로의 내일에 서로가 있기를 대놓고 바랄 수 있다는 게 그렇게도 좋았다.    

 

그랬던 당신과 나였기에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길거리에 홀로 선 채로 눈물을 삼키는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당신과 헤어진 직후 몇 걸음을 걸었을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않으니 견딜 수가 없이 보고 싶었다. 아직 당신을 볼 수 있었음 싶어 뒤를 돌았다.


손톱만 한 당신은 서서히 점이 되어갔다. 그렇게 작아지다 꼭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당신의 점을 시선의 끝에 붙잡아 이끌리듯 따라나섰다. 걸음을 빨리 하자 당신의 점이 손톱만큼 커져가는 재미가 있다.


이제 주먹만큼 작았던 당신이 어린아이만큼 커졌다. 서둘러 달렸던 걸음을 늦추고, 조금 차오른 숨을 삼킨다. 조심히, 내 소리가 들리지 않게 당신의 뒤에 조금의 거리를 두고 따라걸었다. 당신은 누가 자신 뒤에 섰는지 모르는지, 관심이 없는 건지, 역시나 자기 앞을 바라걸을 뿐이다.


당신의 뒷모습을 중심으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들이 보인다. 깊어가는 밤 중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이 수많은 조명을 타고 밤을 빛내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아무도 잠들지 않은,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밤 속을 당신과 내가 나란히 걷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웃고 있다면 나 때문일까? 나와 함께 했던 오늘 하루를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있다면 더욱, 내가 없더라도 나로 인해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다. 내 앞에서처럼 활짝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면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있을까? 오늘 하루가 꽤나 지쳐 얼른 집에 가서 씻지도 않고 침대에 풍덩 누워버리고 싶기만 할 수도 있다. 나와의 하루가 당신의 피로를 덜 수 있는 생기가 피어나기에 당신과 나의 관계는 아직 덜 여문 것이라면 어쩌지.


아니면…     


우뚝.     


당신이 멈췄다. 서둘러 나 또한 멈췄다. 당신은 멈춰선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섰다. 당신은 인적이 덜한 골목에 들어선 순간이었고, 나는 당신이 한참 전에 지나친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심상치 않은 것만큼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길가에 앉아있는 귀여운 고양이를 본 게 아니다. 밟기 싫은 것을 밟아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걷다가 다리가 아파 서 있는 모습도 아니다. 당신의 뒷모습은 그런 평범한 사연을 담고 있지 않았다.


천천히 당신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는 와중에 당신은 고개를 젖혀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봤다. 나도 따라 하늘을 보지만 별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구름이 가득한 밤이다. 금방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다시 당신을 본다. 이제 당신과 나는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희미하게 소리가 들렸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흘러나오는 콧물을 급히 삼키는 것도 같겠지만 그보다는 덜 축축한 소리다. 추위에 떠는 사람이 온몸을 떨며 숨소리를 흩어놓는 것도 같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슴 안쪽에서부터 차오른 떨림이다.


당신이 울고 있다. 울음을 참고, 눈물을 삼키고 있다.


대체 왜?


그 순간 다가설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 이제 겨우 당신과의 걸음에 운을 뗀 게 전부다. 아직 내게 당신의 전부가 이토록 별 거 없다.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 순간에도 당신은 참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고 피부를 손바닥으로 헤집고 있다.


- 집에 잘 갔어요?


지금 당장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 섣불리 당신에게 다가가 안아줄 수도, 섣불리 당신의 눈물을 알고 있다 말할 수도 없다. 아직 나는 당신에게 섣불리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이 눈물로 범벅인 손바닥을 대충 바지에 닦아 휴대폰을 톡톡 친다.


- 아직 가는 중. 너는?

- 나도. 아직 한참 멀었어요.

- 밤길 위험하니까 얼른 가.

- 보고 싶어요.


당신의 숨결 한 자락이 제법 크게 터져나왔다. 당신의 등이 들썩이고, 떨린다. 꾹꾹 눌러담은 물기 어린 감정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뒷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돌아볼래요?


어쩌면 주제 넘은 부탁일 수도 있다. 알면서도 나는 말해야 했다. 지금 당신을 마주 보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마주 봐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원인 모를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내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나는 지금 내가 당신을 위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당신이 뒤를 돌았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절반의 몸을 돌려 나를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당신과 나는 그 누구도 먼저 섣불리 서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당신은 그러지 못했고, 그런 당신을 알기에 난 그러지 않았다.


당신의 얼굴에 흠뻑 흘러내린 눈물을 마주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빛나는 그 눈물들을 닦아줄 수 없는 지금의 내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 당장 나는 당신의 눈물을 볼 수 있다. 처음 보는 당신의 우는 얼굴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 아직 그런 당신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 당신을 안아주고, 당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헐떡이는 당신의 등을 토닥이고, 엉엉 우는 당신의 목소리 틈에서 당신의 고민들을 들어줄 수 없다. 아직은.


보여주기 싫을 뒷모습을 돌이켜, 당신의 자존심을 걷어내어 당신의 눈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쁘다.


앞으로 당신의 눈물에 닿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지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서 이렇게 기쁘다. 이런 나를 당신이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 내일 우리 노래방 갈래요? 낮에 보니까 노래 잘 하드만.


당신이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나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웃는다.


- 좋아. 너무 좋아.


왜 울었느냐, 무슨 일이냐. 묻지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따라와 마음대로 봐버렸으니까.


언제고 당신이 말할 마음이 드는 날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말할 수 있게 내가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괜찮다.


아직 우리는 이제 막 첫 데이트를 끝마쳤을 뿐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