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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내 INAE Jul 22. 2019

뒷모습 : 새벽

Written by. IN-AE

종종 꿈을 꾸는 밤이 있다. 침대 위에서 한참 뒤척이다 귀하게 잠이 들면 어김없이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그 누군가는 꿈을 꿀 때마다 매번 바뀐다. 영화에서나 보던 잔인한 살인마이기도 하고, 지독히도 집착하는 스토커거나, 아무 데서나 불쑥 나타나는 한 맺힌 귀신이거나, 어쩔 때는 한 사람이 아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날 잡으러 쫓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내가 누군가를 쫓아본 적은 없다. 순전히 쫓기는 나로 시작해서 두려움에 떨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허파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생생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결국은 깨고 만다. 그렇게 눈을 뜨면 언제나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였고, 다시 자기에도, 자지 않고 버티기에도 애매한 그 새벽 사이에서 홀로 사투를 벌인다.


한없이 무거운 어둠과 한없이 가벼운 아침이슬이 위아래로 나를 압박한다. 그 압박감을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살 수 있으니까. 그 매일의 일상에서 받은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꿈속에서도 시달리는 주제에 말이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그 또한 버릇이다. 꾸역꾸역 살아남는 것. 사람들의 손짓에,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에 치이고 패인 벌레들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도 꿈틀거리는 것처럼. 어차피 꿈 속이고, 설령 죽는다고 해도 눈을 뜨면 그만인데, 그걸 알면서도 꿈속에서조차 치열하게 삶을 향해 쫓겨나아가는 것처럼. 당연한 듯 숨을 쉬는 것처럼 쫓기듯 꿈을 꾸고 쫓기듯 깨어나 쫓기듯 아침을 맞이하여 밤을 향해 쫓아가는 삶.


나는 그런 내 삶이 너무 싫다.


이런 나를 너는 좋다고 했다. 대체 왜?




“좋아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가 싫은데, 너는 왜 날 좋아할까?


아무 반응이 없는 나를 바라보는 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눈동자가 떨리고, 그 떨림이 입꼬리를 타고 목울대까지 파도를 쳤다. 차츰차츰 내 눈치를 살피며 턱을 뒤로 당기던데, 그건 아마 네가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때 너는 내가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차라리 고백하지 말 걸, 이라며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네게 대답하지 않는 그 짧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날 좋아할 순 있어도, 나조차도 싫은 내 모습을 네가 알게 된다면, 너도 날 싫어하겠지? 그땐 당연히 떠나겠지?


네가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네가 체념했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날 포기하고 있었다. 더 늦었다간 네가 울 것만 같아서, 실망하고 끝내 도망갈 것 같아서 서둘러 말했다.


“좋아해.”


네 얼굴이 순식간에 밝게 빛나 웃게 됐을 때,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네가 떠날 그때 후회하더라도, 지금은 잡아도 되지 않을까?




낮에 차마 내리지 못한 비가 지금 새벽에 몰아 쏟아지고 있다. 지구더러 반쪽 나보라며 천둥까지 우르르 쾅쾅 난리다. 낮에 사람들 다 깨어있을 때는 뭐하고, 남들 다 자는데, 아무도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이제 와서 저 난리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 모습을 창가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는 나 스스로도 뭐하나 싶다. 혼자서 청승맞게.


외로우면 안 되는데. 나는 네가 있어 외로우면 안 되는데,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외롭다. 이 새벽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 때,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계속 때리고 흘러내리기를 반복하는 차갑고도 폭력적인 이 날씨를 온전히 혼자 감내해야 하는 내가 외롭다.


외로우면 안 되나? 왜? 언제부터 외로움에도 조건이 필요했던 걸까?


나의 외로움은 누군가가 없어서 생겨난 감정이 아니다. 누군가가 필요해서 생겨난 감정도 아니다. 나의 외로움은 온전한 나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어 저려오는 오금으로부터 흘러나온 감정이다. 이 세상에 나만 혼자 있는 기분. 섞일 수 없는 기름과 닿을 수 없는 외딴섬처럼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그마저를 드러내도 아무도 개의치 않을 것만 같다.


그 무엇보다도, 그마저의 외로움에 취해 점차 깊게 빠져들어 스스로를 안쓰럽게 여기며 슬퍼하는 나 스스로. 그러니 나의 외로움에는 그 누구도 들일 수 없다.


이런 난데, 너는 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좋다고 했을까?


아니, 나는 너를 왜 붙잡았을까?     


너는 지금 무얼 할까? 잠들고 있다면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꿈조차 꾸지 않게 깊고도 포근하고 개운하게 잤으면 좋겠다. 꿈을 꾸고 있다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여 잠들지 못하고 나처럼 뜬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진 않을까?


전화라도 해볼까? 아니야. 그러다 괜히 자고 있는 사람 깨우면 곤란하지.


한숨. 그리고 혼잣말. “보고 싶다.”


정의하지 않았던 감정을 말로 표현한 순간, 머리는 그걸 명령으로 받아들였는지 심장을 빠르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말의 힘이란 건 대단하게도,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말이 내 주위 공기를 가득 메워서 현실로 만든다.


막연했던 그리움이 정확한 말을 등에 업고 마음껏 날뛰고 있다. 집을 나섰다. 꽤나 먼 너의 집이지만 멀기에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너를 봐야겠다. 네 얼굴을 보고, 네 눈동자에 담긴 내 얼굴을 봐야만 한다.


꿈속에서 그랬듯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러다 폐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힘들어 죽을 것만 같단 말이 제일 정확하다.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비를 맞는 건지 피하는 건지 알 수 없게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너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거칠게 어그러진 숨결을 다듬으면서 생각했다.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봐도 되나?


고민하기도 전에 현관문을 두드렸다. 딱 세 번. 자고 있다면 못 들을 정도로만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그제야 지금 내 꼴을 돌아봤다.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누덕누덕한 모습이 뒤늦게 떠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선 네가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당신이랑 데이트하는 꿈 꾸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고개를 들자 네가 미역처럼 젖은 내 앞머리칼을 쓸어서 빗어 넘겨주었다. 처음 내게 고백했을 때처럼 빛이 나게, 그러나 그때보단 편안하고 나른하게 얼굴 가득 웃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요.”


문을 열어둔 채 네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난 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화장실로 들어가서 수건을 한 장 꺼내오는 너를 보며 생각했다.


여전히 내가 너무 싫지만, 너는 좋아서. 그렇게 좋은 네가 날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아무 때나 찾아와도 너는 아무렇지 않아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성급하게 나를 끌고 이끌지도 다가오지도 않고, 적당히 기다리다 다가온 나를 놓치지 않고 젖은 머리를 말려주는 네가 좋아서. 그렇게 좋은 네가 간밤에 내 꿈을 꿔 좋았다고 말해줘서.


그런 너를 나 스스로가 싫고 외롭다는 이유로 놓쳤다간 용서할 수조차 없어지게 될까 봐, 나는 너를 붙잡았나 보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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