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IN-AE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엔 네가 있었다. 누구의 집에서든 상관없이, 당연하다는 듯 내 옆에서 잠이 든 네 옆에서 당연하게도 눈을 뜨는 아침이었다. 그런 아침이 일상이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 오늘 같은 아침은 새삼스러웠다. 오늘이 유독 그랬다.
항상 먼저 눈을 뜨는 사람은 나였다. 항상 나는 널 향해 돌아누워있고, 넌 나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누워있다. 늘 같았던 포지션이었다.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너의 뒷모습이 보이고, 돌아오지 않을 시선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일방적인 포지션. 마찬가지의 오늘.
예전에는 이런 아침이 서러웠다. 서럽기 전에 서운했고, 서운하기 전에 섭섭했다. 늘 좋은 꾸지 못하는 탓에 눈을 뜨면 졸린 눈의 너를 안아 한껏 칭얼거리고만 싶었다. 그러지 못하고 매번 너의 등만 보게 되는 것이, 너의 무의식은 나를 찾지 않는 걸까, 나만 네게 의지하는 걸까, 나는 네가 의지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인 걸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섭섭한 네게 서운한 아침이 서러워서 자는 너를 두고 홀로 일어나 적적한 아침을 시작하곤 했다.
그러니 오늘의 아침은 조금 다르다. 오늘은 너의 뒷모습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그 어떤 꿈도 꾸지 않고 깊고 달게 잠을 자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은 참으로 오랜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결하지 못한 꿈에서 깨어서도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안은 채 일어나면 그날의 하루를 그 감정으로 살아가게 된다. 일어날 때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색안경을 끼고 사는 나날이다. 눈 앞의 세상이 특별하게만 보인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자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내 감정에 충실하며 하루를 산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특별하게 산다. 그렇게 특별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쓸데없는 것에마저 쓸데없이 의미를 부여하느라 정말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도 아닌 꿈속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정말로 빠져들어 살아야 할 스스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까지 특별하게 보느라 무엇이 가장 특별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의 아침은 그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았다. 가슴이 시리도록 여렸던 새벽빛이 아무렇지 않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비집고 온몸을 채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았다.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전한 비 냄새가 울적하지도 않았고, 가슴을 짓누르는 이불이 전혀 무겁지도 않았다.
그저 나는 오늘 아침 적당한 때에 일어났을 뿐이다. 내 옆에서 잠이 든 너는 내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곤히 잠이 들고 있을 뿐이다. 내 눈에 가득 찬 너의 등은 아주 고른 간격으로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너의 숨은 꽤 깊은 편이어서 내가 숨을 마시고 내뱉는 동안에도 숨을 마시다가 내가 숨을 다시 한번 마시고 내뱉는 동안에 숨을 내쉬고 있었다.
너의 숨바람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방 전체를 뒤덮었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은 너의 숨이 돌아와서는 내게로 스며든다. 그렇게 마신 너의 숨이 나의 숨이 되어 똑같은 길을 다녀와 네게로 스며든다. 방이 너와 나의 숨으로 가득 찰 동안 너와 나는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생각이 든다. 너와 나는 언제부터 서로의 속에 깊이 내려앉은 걸까? 언제 어떻게 서로를 찾아서는 서로의 존재에 확신을 갖고, 눈치 보지 않고 손을 맞잡아도 되는 사이가 되었을까? 어쩌다가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됐고, 어쩌다가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되더니, 마주친 시선을 놓지 않고 끌어당겨 안게 된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끄응- 신음하는 너의 목소리가 너의 어깨를 따라 나를 향해 돌아왔다. 뒤척이던 너는 꼬물꼬물 몸을 돌려 나를 향해 돌아누웠다. 헝클어진 머리가 간지러운지 잔뜩 인상을 쓰길래 냉큼 손을 들어 머리를 넘겨주었다. 눈을 뜰 듯 말 듯 움찔거리던 너는 다시 숨을 푸욱- 내쉬더니 잠이 들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지금 너는 꿈을 꾸고 있음이 분명했다. 미간이 찌푸려졌으니 악몽일까 싶다가도, 눈꺼풀이 꿈틀거리다가 이내 입술이 사악 올라가는 것이 분명 좋은 꿈을 꾸는 모양이었다.
아니,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 꿈에 내가 나와서 더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
네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을 조심스레 내려 너의 입술을 쓰다듬어 보았다. 간밤에 말라 거칠거칠한 안쪽 입술의 감촉이 재밌다. 입술선을 따라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본다. 도톰한 아랫입술에서 굴곡이 많은 윗입술로 올라갈 땐 간간히 불어오는 너의 숨이 닿아 시원하다.
또 한 번 끄응-하며 네가 신음하더니, 곧 기다리고 기다리던 네가 무겁게 눈을 떴다. 입술을 만지던 손으로 너의 뺨을 그러쥐었다.
너는 웃었다. 볼살이 밀려 부풀 정도로 환하게 내게 웃었다. 좋은 꿈보다도 눈 앞의 광경이 더 좋다는 얼굴이었다.
“잘 잤어?”
“잘 잤어요.”
아직 반도 뜨지 못한 눈을 도로 감은 너는 몸을 둥글게 말고 나를 안는다. 네가 꾼 좋은 꿈이, 꿈속에서 좋았던 감정이 나를 안아 해소되는 것이 느껴진다.
너의 아침이 늘 좋았으면 했다. 너의 아침에 내가 있어서 더 좋은 아침이길 바랐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너의 아침 인사.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