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는 당신에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냐 물었더니 당신은 아주 조금 더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우리,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해 보는 건 어때요?”
라더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섣불리 말하기 전에 나도 한 번 골똘히 생각을 좀 더 해봤다. 그제야 날 바라보는 당신이 내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이어 말했다.
“이거 봐요. 이런 거.”
“이런 게 뭔데요?”
“내가 방금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주는 거.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날 위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그 눈빛. 날 위해서 열심히 굴러가는 그 눈동자 말이에요.”
“이런 게 당신한텐 사랑이에요?”
“당신한텐 아닌가요?”
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근본적인 질문이 입술을 탁 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 뭐지?
"나 안 사랑해요?"
당신이 묻는다.
“사랑해요.”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말하지 말 걸 그랬다. 아랫입술이 절로 깨물린다.
“왜 그래요?”
“이렇게 건조하고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어요.”
“사랑한다는 말이요?”
“그래요.”
“왜요?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죠.”
“아니, 그게 아니라...”
“응, 그게 아니라.”
“당연해지고 싶지 않아요.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아무 느낌 없어지는 것도 싫고,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당연해지는 게 싫어요.”
별 거 아닌 사랑이 되는 게 나는 너무 싫다.
음. 당신은 숨을 목으로 쉬듯 신음하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 가는 당신을 서둘러 따라잡으려 달려가자 당신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다가온 내 그림자와 당신의 그림자가 나란히 마주 선다. 당신과 나의 어깨가 맞닿는다. 당신이 고개를 숙인다. 어느새 당신과 나의 발걸음이 닮아진다.
“나는요,”
당신이 말한다.
“당신을 사랑하는 날 사랑해요.”
당신이 말한다.
“당신을 사랑할수록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느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당신이 사랑해줘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내게.
“날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해서 함께 있어도 너무 외로워져 도무지 떨어져 있을 수가 없어요. 지나간 옛사랑이 떠오를 때마저도 웃음이 나는 건 지금의 당신에게 나날이 더욱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다신 사랑이란 걸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난 당신이 아니면 날 사랑하지 못할 거예요. 날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난 당신을 계속 사랑하고 싶어요.”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당신이 든다. 찰나에 마주친 눈길에 부끄러져 이번엔 내가 고개를 숙인다. 당신은 내게 고개를 들라며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고개 숙인 내게 다가온다. 당신은 섣불리 날 끌어안지 않는다. 다만 당신은 조심스레 축 처진 내 두 손을 맞잡아올 뿐이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잡아오는 두 손에 모르는 척 끌려간다.
“이렇게는 사랑한다고 말해도 돼요?”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럼 말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알게요. 더 적극적으로 당신을 알아갈게요.”
“그게 뭐예요.”
“별 거 아니에요. 사랑이에요.”
“당신 사랑이 더 사랑 같아 보여요.”
“이렇게 거창하고 구구절절하게 읊어대는 게 내 사랑이라면, 당신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가슴속의 무언가일 거예요. 난 알아요. 나만 알아요. 그럼 된 거예요. 당신 사랑을 당신과 나만 알면 되는 거예요.”
골똘히 생각하던 당신이 새삼스레 말해왔다. 별 거 아닌 듯이 말해오는 당신에게서 당연해진 사랑을 느낀다. 당연한 사랑은, 별 거 아닌 사랑은 생각보다 특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 아쉽네요.”
“뭐가요?”
“적극적으로 사랑하잔 내 말에 내심 기대했거든요.”
“뭘요?”
“당신이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았지.”
아.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열기가 목선을 타고 얼굴에 몰린다. 오늘 아주 작정하고 부끄러울 말을 부끄럼도 없이 잔뜩 하려나보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시뻘걸 걸 알겠다. 서둘러 잡힌 손을 빼내고 도망치듯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 당신이 달큰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