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Written by. IN-AE

by 인내 INAE


관리인에게 전화가 왔다.


"집구석이 지나치게 엉망이라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만두렵니다. 당신이 어지르고 벌려놓고 방치했던 건 이제 직접 관리하세요."


내가 정리를 못하겠으니까 당신을 고용한 거라며 받아치고 싶었다. 그러나 단념했다. 관리인이 포기할 정도로 내가 내 집을 엉망으로 만든 건 사실이니까.


곧바로 길을 옮겼다. 관리인을 고용한 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집으로 향했다. 내 집은 산을 한참 오른 후 없는 길을 헤쳐 25번째 붉나무를 찾으면 나타난다. 덩그러니 놓인 집 한 채. 커다랗지만 창은 나지 않았고, 지붕은 없지만 옥상이 있다. 회색 시멘트 맨 벽에 하나 난 나무문이 유일한 입구다. 이렇게 좋은 산속에 채광도 전혀 없는 집.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또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도무지 잠시라도 편안하게 쉴 수 없는 집.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최악의 보금자리이고, 잠깐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면 또한 최악의 손님방이다. '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건물에 '나'라는 주인이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나조차도 집이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슬프니까.


떠나올 때는 분명 공터였는데, 관리인의 솜씨 덕에 너무나 잘 가꿔진 정원이 됐다. 너무 화려하고 인위적이어서 탈이긴 하지만. 아마도 관리인은 집 안은 손도 대기 싫어서, 손 대기 쉬운 마당을 제멋대로 꾸며놓은 것일 테다.


내가 바란 모습은 이게 아닌데. 이런 것도 지적하지 못할 정도로 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다.


열쇠를 꺼냈다. 하도 오랜만이라 녹이 슬었다. 이러다 열쇠가 부러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잘 열리더라.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예전엔 많이 봐야 방이 두 개뿐이었는데, 못 본 사이에 다섯 개로 늘어났다. 그 방들의 문들이 모두 활짝 열려 있으니 방에서 뛰쳐나와 얼기설기 뒤엉킨 것들로 거실이 아주 난장판이 됐다. 이러니 관리인이 도망가지 않고는 못 견딜만하다. 소매를 걷어올렸다. 본격적으로 정리 시작하자.


가장 먼저 커다란 회색 철문이 달린 방을 정리했다.


빠지지 못해 고인 빗물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는 신문들을 건져 상자 안에 담았다. 미처 검수하지 못한 오타와 생각 없이 취재하고 집필해 부끄러운 오보로 가득하다. 정성을 들여 편집한 지면은 허울뿐이라 기사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대로 잉크가 번져 검게 변한 웅덩이에 버려진 기자증이 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저 기자증은 건져 올릴 자신이, 자격이 없다. 제멋대로 자판이 뽑힌 키보드와 한 번도 쓰지 않은 녹음기와 늘 남의 말을 받아 적기만 했던 수첩과 펜을 상자 안에 담고 방을 나섰다.


이 방은 한때 가장 좋아했던 곳이지만 이제 이곳에 내 자리는 없다. 한때 내 자리였던 책상도, 의자도, 그 사이에 몰래 숨겨둔 선풍기와 온풍기도, 책상 위를 어지럽힌 메모지와 편집 전의 기사, 레이아웃을 그린 그림들도. 한편에 놓인 명패까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 내 이름 아래 내 것이 됐었지만 그 또한 한때였기에, 다음 이 한때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어 넘겨주어야 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던 반짝이는 햇살도 손 끝에서 놓아야 한다. 외로울 때, 갈 곳이 없을 때마다 와서 몸을 뉘었던 내 쉼터에게서 돌아서야 한다. 이제 다시는 이 문으로 들어올 수 없으므로 문을 닫는다.


그다음, 바퀴 빠진 버스가 그려진 방을 정리했다.


사람은 없고 풍경만 찍힌 사진들과 주인 없는 편지들을 주워 한 앨범에 정리했다. 시간 순도, 공간별도, 그 어떤 순서와 분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앨범에 끼우고 붙였다. 그 어떤 순서와 분별도 필요 없었다. 아름다이 찍힌 풍경 속에 나와 함께 있었던 그와 나눈 추억이 더 아름다웠으므로. 오로지 그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오직 당신만이 날 살게 하고 있다며 호소하는 편지를 아무리 애절하게, 애정으로 썼다 한들 그보다 애절하게 애정하는 그는 이제 없으므로. 앨범은 그를 향한 나의 여전한 사랑의 장부이자 멈춰진 그와 나의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시계다.


그를 만나러 가려 늘 타던 버스를 이젠 바라만 봐야 한다. 그 안에 타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내가 늘 내려서 그를 가득 안아주던 정류장에서 내리겠지, 그 누군가는 내가 그와 손을 잡고 함께 거닐던 산책로를 따라 걷진 않을까. 걷다가, 나와 그가 앉아 서로에게 기대었던 벤치를 지나치고, 걷다가,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보내주던 가로등 아래를 지나치고, 그렇게 걷다가 보면 이제는 내가 갈 수 없는, 그가 없어서 갈 수 없는 그의 집을 똑같은 풍경을 지나듯 지나치겠지.


얼굴 없는 승객들이 모두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나는 그들에게 "잘 가"라고 말한 뒤 문을 닫았다. 그러자 버스는 천천히 이 집을 떠났다. 덩그러니 방 안에 남은 앨범. 이만 문을 닫는다. 당신이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다시 오길 기약하면서.


세 번째 방을 열었다. 가장 먼지가 덜 쌓인 방 안에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책상 한가운데 충전기가 꽂힌 노트북이 놓여 있다. 있는 게 없어서 어지러워질 것도 없으니 그냥 나갈까 싶다가도 노트북이 켜져 있는 걸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리고 가까이 가 노트북 화면을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이 방은 내가 버린 작업실이구나.


바탕화면에도, 시작 메뉴에도, 그 어떤 아이콘도 없이 오롯하게 휴지통이 귀퉁이에 있다. 그 휴지통 안에 든 내 글들이 보인다. 하나하나 열어본다. 쓰고 싶었던 소재로 쓴 소설, 쓰고 싶었던 감정으로 쓴 시, 쓰고 싶었던 주제로 쓴 서평. 그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퇴고하지 못해 기어코 휴지통에 버린 나의 마음과 열정과 그리고 노력.


의자에 앉으니 보이는 천장에 달린 CCTV. 이젠 꺼져 있지만 한때 이 곳에서 글을 쓸 때마다 반짝이는 빨간 점을 의식했다. 이 곳에서 쓴 모든 글 속에, 문장마다, 낱말마다 빨간 점이 찍혀 있다. 쓰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이 퇴고할 때 마침표에 남는 법이 없었다. 글 속에는 CCTV 속 사람들의 얼굴이, 이 작업실을 준 사람의 손가락이 모여 점점 빨갛게 색이 변한 것이다. 오롯한 '내 글'이 아니기에 퇴고했음에도 휴지통에 버려진 것이다.


길을 걷다 멈춰서 휴대폰에,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짧게나마 끄적이는 메모들이 더욱 사랑스럽다. 마감일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쓴 글은 오히려 나로 하여금 작업실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 작업실에서 나의 글을 기다렸을 그 누군가를 나는 끝까지 돌아보지 못했다. 그 누군가도 그만 이 방을 떠나버렸다. CCTV 속 사람들도 이만 이 방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작업실을 가질 자신이, 자격이 없다. 문을 닫는다.


남은 두 방의 문을 바라보았다. 가장 오래되어 낡은 나무문이 달린 방과 가장 최근에 서둘러 만들어져 문도 없이 커튼으로만 가려진 방이 있다.


가장 오래된 방은 가장 넓기에 담긴 물건도, 사진도 많아 유독 어질러져 있지만 그 어지러움이 질서로 자리 잡혀 있다. 그 어질러진 사이에서도 나는 능히 필요한 물건을,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오직 이 방을 위해 집이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방에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솔직하다. 솔직하기에 매정하지만, 솔직하기에 이 방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늘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


가장 어린 방은 가장 좁다. 가장 가난한 방기도 하다. 구석에 놓인 두 개의 가방은 차마 오래 들고 다닐 수도 없이 짐이 많다. 해결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하는 할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가방들의 주인들은 가방들만 두고 나가버렸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직은 정리할 것이 없지만, 새로운 것을 쌓아두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아직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좁은 방이 채워져 있다.


에이. 얼추 정리가 된 듯해 거실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정리할 방도, 더 닫을 문도 지금은 없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 내 집이니까. 내 손을 타는 게 맞는 거지.


크게 숨을 온몸으로 쉬어주곤 다시 일어나 집을 나섰다. 벌써 해가 떨어지는 중이다. 산길이 험악해지기 전에 내려가자. 정원에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숲을 헤치며.


다음에 오면 정원부터 싹 갈아엎어야겠다. 좀 더 나답게, 좀 더 내가 자주 찾아오고 싶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