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풀벌레 소리에 잠들던 밤

by 은파랑




여름날, 풀벌레 소리에 잠들던 밤


창문을 열어둔 채로 누운 여름밤, 한낮의 더위는 바람 속으로 스며들어 잔잔히 가라앉았다. 어둠 속, 풀벌레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귀뚜라미의 고운 울음소리는 대지의 맥박처럼 고르고 부드럽게 흐르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마귀의 낮은 울림은 고요한 밤의 배경음악 같았다.


풀벌레 소리는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이자, 삶의 한 구절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에는 그 울음이 낯설고 새삼스럽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느새 그 소리는 마음을 감싸는 온기가 되었고, 어둠을 두려워하던 어린 날의 나를 다독이는 손길이 되었다.


풀벌레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기억 속의 여름 풍경이 떠올랐다. 달빛이 은빛으로 물들이던 논밭, 그 위로 얇은 안개가 깔려있던 새벽녘의 풍경. 나무 그늘 아래서 쉬던 낮의 평화로움과 모깃불 연기 사이로 스며든 웃음소리. 풀벌레들은 그러한 모든 장면을 다시 불러오는 시간의 메신저 같았다.


한 마리 풀벌레의 울음이 멈추면 다른 울음이 이어지고, 소리는 겹치고 흩어지며 마치 교향곡처럼 밤을 채웠다. 리듬은 단조롭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 속에서 안심이 되었다. 풀벌레들의 소리에는 어떤 약속이 있었다. 이 여름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또 다른 계절이 올 것이며, 계절이 지나가면 여름은 다시 찾아오리라는.


그 밤, 풀벌레 소리에 잠들면서 느꼈다. 작은 울음소리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다는 증거였다. 창밖으로 부는 여름의 바람, 풀벌레 소리의 깊은 울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나의 의식. 모든 것이 조화롭게 섞이며 나를 감싸주었다.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는 그렇게 잠으로 이끌었다. 단순한 어둠의 소리가 아니라, 자연이 들려주는 다정한 노래였다. 노래 속에서 나지막이 속삭이는 세상의 숨결을 들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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