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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마이스타 365 #32

by 은파랑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 앞에서


나무는 바란다.

고요히, 조용히 서 있고자 한다.

하지만 바람은

나무의 소망을 알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가지를 흔들고 잎을 떨군다.

자식은 바란다.

조금 더 다정히, 조금 더 정성껏

어버이를 섬기고자 한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맹자는 말했다.

"나무는 잠잠해지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섬기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생이란

늘 너무 늦게 깨닫고

너무 늦게 달려가고

너무 늦게 손을 내미는 일


우리는 오늘도

바쁘다는 핑계로

어색하다는 핑계로

사랑을 미룬다.


'언젠가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마음을 접는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오는 동안


어버이의 눈가에 깊어진 주름처럼

우리도 모르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


손을 내밀려했을 때, 잡을 손이 사라지고

마음을 전하려 했을 때, 들을 귀가 먹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해야 한다.


지금 사랑해야 한다.

지금 불러야 한다.

지금 안아야 한다.


바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는 망설이지 말자.


사랑은 늘 지금, 이 순간에만 피어날 수 있다.

바람이 불어도, 잎이 흔들려도, 흔들리는 마음 그대로,

미숙한 손길 그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언젠가 고요히 불러볼 이름이

텅 빈 하늘로 사라지기 전에


은파랑




"작은 물방울도 바위를 뚫는다."

— 동양 격언


이 말은 고대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격언으로,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단단한 장벽조차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수많은 고전 속에서 이와 비슷한 문장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한비자』에는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힘이 세서가 아니라, 계속 흘러서다”라는 말이 있다. 동양의 선현들은 자연을 관찰하며 깨달았다. 거대한 힘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작고 약한 존재가 끝없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맹자도, 퇴계 이황도, 그리고 손꼽히는 수많은 동양의 선비들은 짧지 않은 수련의 길을 걸었다. 실패는 수없이 많았고, 눈앞의 성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안다. 오늘 흘린 한 방울의 노력이 내일의 길을 만든다는 것을.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농부는 해마다 같은 씨앗을 심고, 시인은 같은 구절을 되뇐다. 한 줄의 시, 한 줄의 논문, 하나의 도전. 모든 시작은 작고 미약하지만,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 바위도 금이 간다.


우리는 종종 ‘작다’는 이유로, ‘약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포기한다. 하지만 물방울은 말없이 흐른다. 포기하지 않고, 방향을 바꾸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떨어진다.


지금 당장은 아무 변화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단단했던 바위가 조용히 갈라지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단 하루의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작은 날들'의 기적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빠른 결과를 요구하지만, 삶은 언제나 ‘꾸준함’을 증명하라고 말한다. 꾸준히 읽는 책 한 권, 매일 쓰는 글 한 줄, 멈추지 않는 발걸음 하나. 그것이 결국 당신만의 길을 만들 것이다.


오늘 당신이 하는 그 작은 노력 하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 무명의 시간 하나가 언젠가 돌을 뚫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알게 된다. 물방울이 뚫은 건 단지 바위가 아니라, 자기 안의 불가능이라는 믿음이었다는 것을.


작고 약한 존재들이여, 흐르자. 끝내 우리는, 바위를 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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