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48
세상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품고 있다.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이 있다면
그늘 속에서 자라는 독초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선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실수했을 뿐이며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악을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행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거짓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누군가의 선의를 이용하고
때론 타인의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들의 악의는 우연이 아니며
단순한 실수도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선택이며
의식적 행위이다.
그런 이들을 구분해 내야 할 때
우리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 있다.
'분별없는 온정주의'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
"누구나 힘들면 그럴 수 있지."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 주자."
이런 말들은 듣기에 따뜻하고 너그러워 보이지만
너그러움이 반복될 때
악은 자라난다.
제한 없는 이해는
경계를 허물고
경계가 사라진 곳에
악은 더 거칠 것 없이 드러난다.
분명히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선할 수 없다.
항상 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없다.
때론 분노해야 하고
때론 단호하게 거리를 두어야 하며
때론 외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선’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다.
진짜 온정은 악을 외면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짜 온정은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고
악에게는 책임을
선한 이에게는 손을 내미는 데서 온다.
우리는 모두 실수한다.
하지만 실수는 반복되는 악의와 같지 않다.
실수한 이에게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악을 반복하는 이에게는
기회의 이름으로 더 이상의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해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는
묘한 도식이 생겼다.
하지만 진짜 착한 사람은
나쁜 짓에 눈감는 이가 아니라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불편한 진실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다.
온정을 베풀고 싶다면
먼저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온정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결과가 누구에게 상처가 될지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악은 누군가의 무지 속에서 자라고
악은 누군가의 온정 속에서 보호받는다.
그래서 때론
선함보다 분별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