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by 은파랑




욕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말의 가장자리에서 감정을 읽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바람은 모서리마다 부딪혀 욕설처럼 쏟아졌고 한 남자는 조용히 벽을 향해 말했다.


"C8"


한마디에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다. 그 말은 누군가를 향한 비수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터져 나온 감정의 결이었다. 욕은 그렇게 때론 무례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진실하게 인간의 마음을 증언해 왔다.


고대의 인간은 불을 피우기 전 먼저 감정을 피웠다. 돌멩이 하나를 걷어차며 터뜨린 원시적 탄식, 짐승의 공격을 피하며 내지른 거친 외침 그리고 아픔을 삼키듯 뱉은 말의 파편들. 그것은 욕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어학자들은 욕설이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쌍스러운 말’은 말의 타락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였고 언어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넘어진 결과였다. 욕은 그렇게 감정의 원형이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혁명은 욕에서 시작된다”라고 했다. 억압된 민중은 먼저 욕부터 배운다. ‘젠장할’, ‘개 같은’이라는 말은 어떤 군주의 이름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프랑스혁명의 거리에서는 ‘새끼들’이라는 말이 전복의 깃발처럼 나부꼈고 일제강점기의 한국인들은 총을 들기 전에 먼저 욕으로 저항했다. 욕은 말의 가장자리에 있으나 감정의 중심에 있다. 한 민족이 잊지 못하는 욕은 그들이 견뎌낸 고통의 언어이기도 하다.


욕은 금기의 언어다. 그러나 금기가 있다는 건 그만큼 욕이 강력한 힘을 지녔다는 반증이다. 미셸 푸코는 금기를 권력의 장치라 보았고 금기된 욕설은 오히려 권력의 반대편에서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말이 사람을 규율할 때 욕은 규율을 깨는 첫 망치가 된다. 고상한 문장은 질서를 지향하지만 욕은 혼돈 속에서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욕은 때로 철학보다 더 인간적이다. 삶은 문장이 아니라 탄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진부하다"라고 했지만 욕은 진부하지 않다. 매 순간 새롭게 탄생하며 감정의 색깔을 입는다. "C8" 하나에 억울함, 슬픔, 분노, 좌절, 때론 기쁨까지 담긴다. 이것은 시와 다를 바 없다. 시인이 은유로 삶을 말하듯 평범한 사람은 욕으로 삶을 뱉는다. 욕은 서민의 시이고 소외된 자의 목소리이며 억눌린 이의 해방구다.


심리학자 브래들리 부시(Bradley Busch)는 실험을 통해 욕이 고통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참가자들에게 욕을 하게 했더니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통증을 더 오래 견뎠다는 것이다. 욕은 일종의 감정 밸브다. 억눌린 감정을 빠르게 분출하고 뇌에서 통증과 관련된 회로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이것은 원시적 충동의 표현이자 뇌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인간의 전두엽은 사회적 규범을 학습시키지만 편도체와 변연계는 여전히 ‘살기 위해 외치라’고 말한다. 그 외침이 욕이다. 감정을 억제할수록 사람은 병들고 감정을 조절할수록 사람은 강해진다. 욕은 이 둘의 중간 지점에서 작동하는 언어다. 분출과 통제를 동시에 아우르며 인간을 붕괴가 아닌 복원으로 이끈다.


욕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욕은 교양 없는 자의 언어로 취급되고 어떤 욕은 유머로 소비된다. 계급은 욕의 쓰임마저 나눈다. 상류층의 "제길, 이런 재수 없는 날씨 같으니"는 괜찮지만 하층민의 "C8, 또 비야"는 천박하게 들린다. 이차적인 차별이 여기서 발생한다. 욕도 계급화된다.


그러나 동시에 욕은 계급을 넘는 다리이기도 하다. 정치권, 노동 현장, SNS에서 ‘욕 잘하는 사람’은 공감을 얻는다. 욕은 직설적이다. 솔직하다. 정제된 언어가 감정을 감추는 데 반해 욕은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더 믿음직하다. 사람들은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보다, 함께 욕할 수 있는 친구를 더 신뢰한다. 욕은 사회적 유대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이른바 ‘욕정(辱情)의 공동체’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인간의 언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고 주장했다. 포식자에게 위협을 알리고 동료를 격려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이었다. 욕은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빠른 신호였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욕은 언어중추인 브로카 영역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생성된다. 그것은 논리 이전의 언어, 감정의 언어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 "젠장"이라고 말할 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나온다. 이 '그냥'이야말로 진짜 감정의 힘이다.


욕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줄이고 심박수를 안정시키는 생리적 효과를 유발한다. 한마디 욕이 명상보다도 더 큰 이완을 가져다주는 이유다. 과학은 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한다. 욕은 인간의 진화적 산물이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감정 해소 기제 중 하나다.


욕은 문법적으로 불완전하고 도덕적으로 불편하며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말보다 솔직하고 강렬하며 인간답다. 말의 중심에서 벗어난 욕은 오히려 마음의 중심에 가장 가깝다. 문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의 언덕, 그 정상에서 우리는 한 줄의 시가 아닌 한마디 욕을 내뱉는다.


욕은 나를 지키고 나를 회복시키고 때론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게 해 준다. 그렇게 욕은 말의 가장자리에서 인간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을 읽기 위해 다시 욕을 배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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