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욕은 뜨겁지 않다.
불쑥 솟구치는 감정 대신 조용히 식어버린 분노의 언저리에서 탄생한다. 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으며 심지어 웃으며 던지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늘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 서울의 욕은 감정 없는 분노다. 그것은 욕이라기보다 판단이고 선언이며 때론 고요한 처형이다.
“야, 미 X놈아.”
이 말은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품는다. 남도에서는 울컥하는 격정이 담기고 경상도에서는 한 방의 돌직구처럼 날아오며 강원도에서는 어눌하고 서툰 미움이 묻어난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 지역의 "미 X놈아"는 다르다.
여기엔 쌓여 있는 감정도 터지는 분노도 없다. 오히려 철저히 통제된 감정의 톤. 비꼼은 절제되어 있고 목소리는 담담하다. 마치 “넌 인간이 아니야”라는 선언을 욕이라는 형식으로 정리해 전달하는 듯하다. 정작 말하는 이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다. 침착함이 더 큰 공포와 모멸감을 만들어낸다.
서울의 욕은 말보다 ‘톤’으로 말한다.
“어휴, 저 인간 또 시작이네.”
“야, 넌 진짜 미 X 놈이구나.”
목소리는 낮고 어깨는 흐트러지지 않으며 억양은 오히려 평이하다. 이것은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감정의 제거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세련되고 더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문화. 이 도시의 욕은 억누름 속에서 탄생한다.
이런 말투는 욕을 사회적 도구로 만든다.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자신의 우위를 조용히 알린다. “너는 나보다 아래야.”, “넌 이 상황을 모르는구나.”라는 메시지를 한 줄의 욕에 조용히 담아 보낸다.
서울식 욕은 그래서 감정이 아니라 지위의 언어다. 절제된 비난은 상대에게 사회적 열패감을 은밀하게 주입한다.
서울은 거리의 감정이 지워진 도시다. 지하철 안의 침묵, 직장에서의 조심스러운 농담, 회식 자리의 뒷담화까지. 감정은 드러내지 않되 수면 아래로는 빠르게 흐른다. 이 도시에선 ‘화난 사람’보다 ‘냉소적인 사람’이 더 강하다.
그래서 욕조차도 철저히 통제된다. ‘폭발’보다는 ‘비꼼’, ‘울분’보다는 ‘회피’.
서울식 욕은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감정을 상대한테 떠넘긴다.
“미 X 놈”이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듣는 이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 욕에는 감정의 교환이 없다. 오직 고립된 판단의 일방통행만 존재한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욕은 종종 농담의 형태를 띤다.
“야, 너 미 X 놈 아니야?”
말끝에 웃음이 섞인다. 하지만 웃음은 진심인가, 조롱인가? 농담인가, 경고인가?
이중적인 감정 표현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싸늘하다. 말투는 장난처럼 들리지만 듣는 이는 그것이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이것이 서울의 욕이 갖는 심리적 압박의 미학이다. 거칠지 않아도 아프고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상처를 준다. 한 문장의 비꼼 안에 ‘너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멀쩡하지 않다’는 사회적 판단이 담긴다.
다른 지역에서는 욕이 유대감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친구끼리 형제끼리 욕을 섞어 대화하며 정을 나눈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에서는 욕이 ‘정’을 담는 경우가 드물다. 욕은 관계를 맺는 언어가 아니라 관계를 잘라내는 도구다.
서울식 욕은 직설적이지 않다. 그것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며 ‘거리’를 벌리는 말이다.
“참 답 없는 인간이네.”
“너 같은 애들은 꼭 그래.”
이 말들에는 욕보다 더 날카로운 선 긋기가 들어 있다. 여기엔 해결의 가능성도 화해의 여지도 없다. 냉정한 구분과 평가만이 남는다.
서울과 경기의 욕은 차갑다. 그래서 더 아프다.
폭발하지 않는 욕은 감정을 해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감정을 떠넘기고 고요하게 멍을 남긴다.
뜨거운 욕은 순간을 태운다.
하지만 차가운 욕은 오래 남는다.
“야, 미 X놈아.”
이 짧은 한마디 안에는 분노, 무시, 평가, 경멸이 층층이 겹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그 말이 너무도 조용히 말해진다는 것이다.
서울의 욕은 그래서 끝이 없다. 소리 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이 아직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지우는 도시에서 욕은 분노의 말이 아니라 감정 없는 경계선이 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