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아니라, 말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욕은 단어 자체보다 그것이 어떻게 발화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똑같은 욕이라도 억양, 리듬, 호흡, 시선, 목소리의 떨림에 따라 분노가 되기도 하고 유머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눈물 섞인 호소가 되기도 한다. 욕은 문장의 끝이 아니라 감정의 시작이다. 억양 하나에 담긴 온도와 속도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무력화시킨다.
우리는 언어를 글이 아닌 소리로 먼저 배운다.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말속에서 단어보다 억양을 먼저 듣는다. 말의 의미보다 더 빠르게,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소리의 높낮이, 끊어짐 그리고 흐름이다. 욕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감정의 박자를 타고 흐른다.
예를 들어 누군가 “C8”을 말할 때 그것이 짧고 단단하게 튀어나오면 ‘분노’다. 하지만 길고 늘어지며 리듬이 감정을 비틀 듯 흐른다면 ‘허탈’이나 ‘체념’이 된다.
“C-이-이-이-8…”
이 소리는 울음을 꾹 참고 터뜨리는 마지막 숨 같다.
이처럼 욕은 음악이다. 감정의 비트 위에 얹힌 언어. 리듬은 말의 뼈대를 감정으로 덮고 억양은 말의 진심을 연기한다.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은 억양을 “의도와 정서의 궤도”라고 말했다. 문장에 담긴 진짜 감정은 단어보다 억양을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다. 욕은 이 점에서 정서의 결정체다. 말보다 더 솔직한 감정의 열이다.
화가 나서 하는 욕과 웃으며 툭 던지는 욕은 억양부터 다르다. 전자는 어깨가 긴장되고 목소리는 높아지며 호흡이 거칠다. 반면 후자의 욕은 어딘가 여유롭고 웃음과 섞여 농담처럼 들린다. 이 둘 사이의 온도 차는 단어가 아니라 목소리의 흐름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욕은 누가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야, 이 개 X 끼야!”라는 말조차 억양에 따라 다정한 농담이 될 수 있다. 또한 “야, 그만해.”라는 평범한 문장도 억양 하나 바뀌면 무시와 분노를 품을 수 있다.
억양은 말의 체온이다. 우리는 억양으로 상대의 마음을 감지하고 진의를 직감한다. 욕은 감정의 최고점에서 태어나는 언어다.
모든 말은 리듬을 갖는다. 그러나 욕의 리듬은 특별하다. 욕은 멈칫거리거나 속도를 높이거나, 갑작스럽게 폭발하거나 한다. 리듬이 일정하지 않고 감정에 따라 출렁인다. 출렁임은 기억의 파문처럼 마음을 뒤흔든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작은 욕설에도 리듬을 감지하고 몸을 움찔한다. 반대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욕은 오히려 리듬이 장난스럽다.
“야, 이 미친놈아~”
이 말은 공격이 아니라 친밀한 애정의 리듬이다.
욕은 감정의 파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리듬은 단어보다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욕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리듬이 마음을 때렸기 때문이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떨림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투와 억양을 통해 관계의 수직 구조를 해석한다. 위계가 있는 관계에서의 욕은 억눌림이나 위협이 되고 평등한 관계에서의 욕은 유대감을 만든다. 억양은 관계의 감정적 거리감을 측정하는 도구다.
친구끼리의 욕은 대부분 억양이 부드럽고 리듬이 가볍다. 그러나 직장 상사의 욕은 억양이 강압적이고 리듬이 명령적이다. 억양 하나로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채게 된다.
욕은 ‘화를 냈다’가 아니다.
욕은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다.
결국 욕은 말이 아니라 말투다.
억양과 리듬은 욕을 무기로도 위로로도 농담으로도 만든다.
어떤 욕은 상처를 주고 어떤 욕은 상처를 보듬는다.
어떤 욕은 벽을 세우고 어떤 욕은 다리를 놓는다.
욕은 단어가 아니라 감정의 방식이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욕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화가 나거나 너무 억울할 때. 욕은 그럴 때 목소리로 튀어나온다.
그 순간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를 썼느냐보다도 어떤 억양으로 어떤 리듬으로 어떤 마음으로 말했느냐다.
말은 결국 마음의 소리다.
욕이 그렇다면 욕이 품은 마음의 모양이 가장 중요하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