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186
요즘 들어 우리는 자주 지친다. 말을 하지 않아도 소셜미디어 한 줄 메시지 속에서도 문자 하나 없이 조용히 멀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딘가 마모되는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끝난 후 정수기 필터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함이 남는다. 관계가 주는 따뜻함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감정의 비용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관계 디톡스’를 말해야 한다.
심리학자 스티븐 헤이스는 인간의 고통 중 상당수가 “끊어내지 못한 불필요한 연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때문이 아니다. 때로는 나를 설명해야 하는 피로, 끊임없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 피곤함, 적당히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 조용히 짓누른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 노동’은 직장에서의 일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처받을까?’, ‘이건 너무 이기적인 걸까?’라는 끊임없는 자문 속에서 진짜 나의 감정은 점점 침묵하고 만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과잉 연결(hyperconnectivity)' 시대를 말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수백 명과 동시에 연결되어 있지만 진심 어린 대화는 사라지고 있다. 표정 없는 이모티콘, 형식적인 안부, 끝나지 않는 단체방 알림 속에서 정작 중요한 말을 꺼낼 타이밍을 잃는다.
마셜 맥루언은 이미 예언했다. 미디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관계 방식을 바꾼다고. 지금 우리는 ‘연결’이라는 이름 아래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아 연출의 사회]에서 인간은 모두 무대 위의 배우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관계는 일종의 무대이고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좋은 딸’, ‘배려 깊은 친구’, ‘착한 연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감정을 포장하고, 때로는 숨긴다. 하지만 무대가 끝나면? 배우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 이상 나의 감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관계 속에서 나를 잃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침식이고 자존감의 붕괴이며 삶의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
신경과학은 말한다. 인간의 뇌는 타인의 표정, 목소리 톤, 말의 뉘앙스를 해석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쓴다고. 특히 '사회적 피로(social fatigue)'는 멀티태스킹보다도 높은 에너지 소모를 유발한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는 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하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증가시킨다.
이쯤 되면, ‘관계’가 에너지 충전이 아니라 소모가 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향기가 난다.”
디톡스란 단절이 아니라 회복이다.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숨 쉴 틈을 주는 것이다.
‘관계 디톡스’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보호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의 균형은 외부로 향하는 연결을 줄이고 내면과의 대화를 늘리는 데서 시작된다고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답을 주려 했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이 관계는 나를 살찌우는가, 혹은 소모시키는가?
이 대화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옥죄는가?
이 침묵은 건강한가, 아니면 외로운가?
‘관계 디톡스’는 일시적인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재정립이다.
선택적인 고요, 의식적인 거리 두기, 솔직한 침묵이 새로운 연결을 위한 준비가 된다.
지금 우리가 ‘관계 디톡스’를 말해야 하는 이유는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해서다.
더 건강하게, 더 나답게,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
이제 관계를 정리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나를 더 잘 사랑하는 법이자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는 시작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