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28
사람을 떠난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관계를 끊는다는 건 연락을 끊거나 거리를 두는 행동 그 이상의 일이다.
그건 오래된 나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이고 어떤 기억과 감정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야 할 때에도 망설인다.
이미 마음이 지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되돌아본다.
왜일까. 왜 우리는 분명히 힘든데 끊지 못하는가?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인간은 ‘애착(attachment)’이라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했다.
애착은 안정과 위안을 주는 연결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애착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에서도 쉽게 떠나지 못한다.
그 사람의 온기나 말 한마디에 다시 희망을 걸고 다시 실망하고 또다시 기대한다.
이런 ‘불안정-회피적 애착’은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이성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는 계속 붙잡게 만든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이것을 ‘관계 유지 행동(Relationship Maintenance Behavior)’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갈등이나 불편함이 있더라도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왜냐하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에는 에너지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익숙한 고통이 낯선 자유보다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장 난 관계 안에 머무르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 정도면 괜찮아."
"그래도 이 사람밖에 없어."
"지금 나가면 더 외로울 거야."
사회학자들은 이걸 ‘정서적 거래(emotional transaction)’라고 부른다.
즉, 우리는 관계에서 ‘받은 것’이 많다고 느끼면 그것을 빚처럼 안고 간다.
좋았던 시절의 추억, 힘들 때 함께해 준 기억, 한때의 따뜻한 말들
그 순간들은 채권처럼 마음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합리화하게 만든다.
“이 사람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
“이 관계는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없어.”
그러나 기억은 늘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우리의 뇌는 관계의 좋은 순간만을 기억하며 나쁜 순간을 둔감하게 만든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그 관계에 머물고 있는가?
상대가 정말 필요한가 아니면 ‘관계의 존재 자체’가 당신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는가?
‘그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건 아닌가?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익숙함에 중독된다.
같이 울었던 시간, 같이 웃었던 계절, 지나온 시간들이 증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의 고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의 당신이 아프다면 그건 단호하게 직면해야 할 현실이다.
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걸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지나친 거 아닐까?"
하지만 ‘거절’은 비난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멈출 수도 있다.
자기 보호는 잔인함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다.
과학은 말한다.
뇌는 ‘예측 가능한 미래’를 선호한다고
고통스럽더라도 미래가 예측 가능하다면 불확실한 자유보다 고통을 택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버티고 또 버틴다.
하지만 변화는 불확실함의 안개를 지나야 만 도달할 수 있는 산맥의 너머에 있다.
안개를 뚫을 용기가 없다면 영영 제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관계는 늘 애매한 경계 위에 놓인다.
그 사람은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말투로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더 이상 곁에 두고 싶지 않다.
그럴 땐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지금 이 관계가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있다.”
“익숙한 고통을 나는 이제 더 견디고 싶지 않다.”
“상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해도 나는 떠나도 된다.”
끊지 못하는 이유를 직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이별을 시작할 수 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나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