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12
죄는 언제 태어나는가
밤의 어둠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가
아니면 사랑이 천천히 시들어갈 때, 고요히 싹을 틔우는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삶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이 질문을 마주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죽음 앞에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그는 깨달았다. 죄는 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죄의 본질은 사랑의 결핍이라고
우리는 죄를 법률로 규정하고 잘못된 행동으로 수치화하며 타인의 죄에 손쉽게 돌을 던진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묻는다.
“죄는 사랑을 잃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위대한 인간은 죄를 넘어선다고 믿었고 자신의 행위를 논리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논리를 견디지 못했다.
무엇이 그를 무너뜨렸는가?
그것은 법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의 부재였다. 타인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점점 잃어갔다. 죄는 단지 그 결과일 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죄란 타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눈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웃의 고독을 지나치며 나 아닌 모든 존재를 도구로 여기기 시작할 때 사랑은 마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메마른 자리에 죄는 자라난다.
죄는 돌처럼 무겁고 칼처럼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길을 피하는 작은 무관심, 말을 건네지 못하는 침묵,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응어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 영혼을 휘감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이반은 신의 부재를 주장하며 절규한다. 그는 사랑이 없는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이가 고통받는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절망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너무도 깊은 갈망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반의 입을 통해 말하지만 동시에 알료샤의 온기를 통해 답한다.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랑만이 죄를 이긴다고
죄는 인간이 저지르는 것이지만
본질은 인간이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손길, 친구의 눈빛, 연인의 목소리
모든 작고 따뜻한 사랑의 조각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죄의 문턱에 선다.
그러므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에게 형벌보다 먼저 사랑을 묻는다.
그는 죄인을 정죄하기보다 그가 얼마나 사랑받지 못했는지를 들여다본다.
왜냐하면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용서와 회복은 법이 아니라 사랑에서만 시작된다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는 어둡고, 고통스럽고, 절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모든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한 줄기 사랑이 흐르고 있다.
죄인에게조차 자비를 보내는 신의 시선
쓰러진 자에게 손을 내미는 인간의 가능성
우리는 완전하지 않지만 사랑할 수 있다.
죄지은 자에게도
상처 입은 자에게도
무엇보다, 스스로에게도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죄는 자라지만
사랑이 스며드는 순간, 죄는 서서히 사라진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일생을 걸어 깨달은 진실이었다.
그는 말하고 있다.
죄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을 잃은 마음을 다시 보라고
그곳에서부터 인간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