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03
두려움은 언제나 말없이 시작된다.
안개처럼 무언의 발소리로 다가온다.
한밤중 창문 너머 흔들리는 커튼처럼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모를 떨림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마음을 적신다.
떨림은 아주 작은 균열 하나로 시작되지만
곧 마음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다.
두려움은 고통을 부른다.
두려움은 묻는다.
“만약 그 일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고통은 대답한다.
“이미 시작되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끓고
눈물은 흐르지 않아도 가슴속에 넘친다.
사랑하던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믿었던 것들이 부서지고
자신조차 낯설어진 채
고통은 마음 깊숙한 곳에 얼음처럼 뿌리를 내린다.
고통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 자리를 분노에게 내어준다.
분노는 검은 바람처럼 불어온다.
바람은 무너진 자존을 일으켜 세우려는 몸부림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다.
분노는 말한다.
“누군가 책임져야 해. 누군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그 말속엔 상처받은 마음의 절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소리는 너무 커,
다른 이의 고통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분노는 증오로 굳어진다.
증오는 불이 아니라 얼음이다.
차갑고 단단하며 끝없는 겨울처럼 지속된다.
그 속에선 용서도, 이해도 얼어붙는다.
증오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독이다.
햇살을 외면하고
손 내미는 자를 물리치며
증오는 마음속에 하나의 감옥을 짓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가둔다.
하지만, 어둠이 영원한 계절은 없다.
한 줄기 빛은 가끔 아주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잊고 있던 노래 한 소절
자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느 새벽
작은 빛이 두려움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그때 알게 된다.
두려움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잃을까 봐 생겨난 것이며, 고통은 무너져서가 아니라 사랑했기에 깊었던 것이고, 분노는 사라지기 전에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몸짓이며, 증오조차도 사실은 끝내 이해받고 싶은 외로운 외침이었다는 것을
이 모든 감정은 결국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화내고, 미워하면서도
다시 손을 뻗고 눈을 마주치고
기억 너머의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이유다.
두려움에서 증오까지 걸어온 길 위에
다시 한번 작은 봄이 피어나기를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도
그 봄이 머물기를
은파랑